[특파원 칼럼/서영아]겉만 보고 속 못보는 일본 관광

  • 입력 2007년 7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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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요즘이야말로 ‘내선일체(內鮮一體·‘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뜻으로 일제의 식민 정책 표어)’가 실현된 거 아냐?”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요즘 이런 ‘농담’이 심심치 않게 오간다. 일본 거리마다 넘쳐 나는 한국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름 바겐세일이 시작된 도쿄 긴자(銀座)의 미쓰코시(三越) 백화점 고객의 3분의 1 정도는 한국에서 쇼핑 온 관광객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어 안내방송이 나올 정도다.

말 그대로 세계화란 이런 걸까. 백화점가의 ‘70% 세일’ 정보를 일본 사람들은 잘 몰라도 한국에서는 금세 파악하고 달려온다. 도쿄만 해도 롯폰기(六本木) 오다이바(お臺場) 시부야(澁谷) 긴자 등 명소라고 할 만한 곳 어딜 가나 한국인 관광객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관광객만 많은 게 아니다. 학계나 비정부기구(NGO)의 심포지엄이나 공동행사도 빈번하다. 단체나 조직 등도 지부를 만들어 한국과 동시 진행형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양국을 오가는 여행객은 지난해 46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원고(高) 엔저(低)’에 힘입어 한국에서 일본으로 오는 사람이 조사 이래 처음으로 반대 경우보다 많아졌다. 일본 백화점 세일 상품까지 휩쓸어 가니, 한마디로 한국인들은 지금 일본에 돈을 쏟아 붓고 있는 셈이다.

돈을 쓰는 처지에서는 일본 여행은 쾌적하기만 하다. 일본인 특유의 허리를 숙이는 서비스를 받으며 약간은 우쭐대는 기분에 빠지는 한국인도 있는 모양이다. 한국의 지하철 표지판에는 일본어가 없지만 일본의 전철 안내판에는 대부분 한국어가 병기돼 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산케이신문은 최근 쓰시마 섬에 한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자 ‘한국 관광객이 쓰시마 섬을 자국 영토라 주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기사로 일본 민족주의에 불을 붙이려 시도했다. 이런 황당한 시각은 별로 먹혀들지 않지만 한국인들의 ‘몰(沒) 매너’를 두고 뒤돌아 손가락질하는 일본인이 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만큼 양국의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다. 기왕 일본에서 돈을 쓰는 것이라면 겉모양만 볼 것이 아니라 속도 보고 뭔가 얻어 가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역사를 살펴보면 어떨까. 가령 1590년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여세를 몰아 중국대륙으로 진출하겠다는 꿈을 안고 한반도를 침략했다. 그 300여 년 뒤 일본은 또다시 한국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았다.

누구나 다 알고 분통을 터뜨리는 역사지만 왜 일본이 줄기차게 한국을 침략했는지, 그 침략의 힘은 어디서 유래했는지 곰곰이 따져보는 분위기는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조선의 도공들을 끌고 가 도자기 산업을 일으켰다. 조선 도공의 기술에서 시작된 일본 도자기는 100년도 안 돼 유럽의 식탁을 점령할 정도로 번성했고 일본에 엄청난 부를 안겨 줬다. 흔히 ‘역사상 일본이 가장 빛났던 시기’라고 하는 메이지(明治) 유신을 뒷받침한 경제력도 상당 부분 도자기를 중심으로 한 무역에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일본은 한국에서 얻어 갈 것과 배워 갈 것을 알뜰하게 챙긴 것이다. 일제 강점기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지리며 문화재며 풍습까지 일본은 철저하게 연구했다.

세월이 흘러 지금 한국인들은 돈을 들고 일본을 찾고 있다. 비싼 수업료를 내는 만큼 쇼핑이나 관광 말고도 일본인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점까지 꿰뚫어 보는 혜안을 얻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론 이웃으로서 서로 깊이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서영아 도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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