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키워드다.
볼수록 신비롭고 알수록 묘하기만 한 인도. 그런 인도에 ‘신도 예서는 짐을 벗고 쉬어 간다’는 절세의 휴양지가 있다. 팜트리 우거져 열대 정취가 물씬 나는 아라비아 해와 게서 조우하는 환상적인 노을.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죽기 전 꼭 가봐야 할 50곳’에 추천한 인도 서남부의 케랄라 주다. 아름다운 뱃길이 숨어 있는 축복의 땅으로 여행을 떠난다. 》
유럽과 통한 ‘인도의 門’… 神도 쉬어가는 낙원
○ 인도 최고(最古)의 무역항 코치
오후 10시가 한참 지난 코치 국제공항. 싱가포르 경유 루트로 비행기에서만 꼬박 10시간을 보낸 뒤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인도가 아니다. ‘향신료의 나라’다운 자극적인 냄새, 길거리의 오물, 길을 막는 소가 보이지 않는다. 휴양지여서일까.
‘케랄라’는 ‘코코넛의 땅’을 뜻한다. 그러나 유럽 상인에게는 향신료와 상아를 얻을 수 있는 무역항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중심은 공항이 자리 잡은 이곳 코치다. 무역항이다 보니 중국과 아랍,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문화가 뒤섞여 있다. 오랜 교류의 결과다.
물가에서 보게 된 고기잡이도 그중 하나다. 거대한 뜰채 모양으로 큰 그물을 나무에 매달아 바다에 담갔다가 다시 끌어 올리는 식인데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칸 시절에 전해진 중국 광둥지방의 전통어업 기법이란다. 많이 잡히지는 않아도 장정 대여섯이 펼치던 고기잡이는 보기에도 재미있었다.
포르투갈의 흔적으로는 1503년 건축된 성 프란시스 성당이 있다. 인도와 포르투갈의 관계는 특별하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비잔틴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튀르크의 이슬람제국 등장이 그 계기다. 유럽의 동방무역 루트인 실크로드가 이스탄불에서 가로막히자 유럽제국은 뱃길 개척에 나선다. 이때 등장한 이가 포르투갈의 항해왕자 엔리케다. 그런 노력의 결과 바르톨로뮤 디아스는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대륙 동편의 새로운 바다(인도양)를 발견한다.
이어 바스코 다가마가 1497년 인도양 개척 항해에 나서 이듬해 인도의 동방무역 거점항인 캘리컷에 입항한다. 그 다가마가 숨진 곳이 바로 여기 코치다. 그는 1524년 포르투갈의 인도 무역 책임자로 부임했다가 과로로 숨지고 성 프란시스 성당에 묻힌다. 유해는 12년 후 포르투갈의 고향에 안치됐다.
성당에서 멀지 않은 거리의 마탄체리 궁전도 이름난 유적이다. 이곳의 보물은 벽화인데 마치 불교의 탱화처럼 이야기와 신화를 잔뜩 늘어놓고 있다. 궁전은 외관보다 속이 더 알차니 꼭 관람하시기를 권한다.
코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카타칼리(민속무용극)다. ‘카타’는 이야기, ‘칼리’는 연극. 잔뜩 부풀린 치마를 입고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배우는 모두 남자다.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하면 분장 과정은 물론 리허설까지 본다. 배우의 표정과 수신호, 몸짓 등 감정 표현을 미리 알아두면 공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도심에선 국산 자동차도 제법 많이 보인다. 또 빈터에선 예외 없이 크리켓을 하는 꼬마들을 만난다. 여기서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는 잔돈을 준비해야 한다. 작은 것은 1루피(25원), 큰 것은 3루피다.
○ 인도의 베니스, 쿠마라콤
케랄라 주의 호수 뱀바나드는 바다처럼 넓다. 남북간 길이가 96.5km나 된다. 이 호수에서도 알라푸자는 수상으로 오가는 이곳 교통의 요지. 여기서 배를 타고 수로여행에 나섰다. 배 주변으로 푸른 하늘을 가린 코코넛트리가 스쳐 지나갔다.
15분쯤 지났을 즈음. 수문이 열리더니 신천지가 펼쳐진다. 코코넛 라군의 리조트다. 이곳은 호수 동쪽의 팜트리 호반으로 야자수 숲에 숨듯 자리 잡았다. 이 리조트호텔에서는 즐길 거리가 다양했다. 요가와 낚시는 물론 카누 타기에 선셋 크루즈까지. 세계 곳곳서 날아온 철새들이 쉬어가는 보호구역도 있다.
케랄라 원주민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빌리지 투어에 나섰다. 옷을 곱게 차려입은 꼬마들이 관광객을 쫓아와 뭐라고 얘기하며 손을 내민다. 사진을 찍어주니 마냥 좋아한다. 플레이 스테이션에 중독돼 사람보다 정보통신기기를 더 쫓는 우리 아이들과 너무도 다른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얼떨떨해진다.
알라푸자의 명물은 관광객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하우스보트로 물의 도시 쿠마라콤의 명물이다. 대나무 틀에 야자나무 잎으로 바구니를 짜듯 이은 지붕을 얹은 목선인데 곡선의 조형미가 일품이다. 이 보트 안에는 없는 것이 없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회의실에 침대가 딸린 객실도 있다. 요리사도 있어 음식을 맛보며 호반의 풍광을 즐긴다.
선상에 맛본 탈리 밀즈라는 전통요리는 그런대로 좋았다. 밀가루 빵을 기름에 튀긴 ‘푸리’도 맛보았다. 물길을 따르다 보면 물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 목욕하는 어린이, 낚시 중인 아저씨 모습 등 다양한 삶의 현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마탄체리 궁전의 이야기가 있는 벽화처럼.
○ 케랄라의 주도 트리반드룸
알라푸자에서 버스로 4시간. 인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코발람 비치 인근에 여장을 풀고 최남단의 대도시 트리반드룸을 찾았다. 거리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버스를 기다리고 손님을 호객하고…. 모두들 바빠 보인다. 스리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은 200년 역사의 힌두교 유적이다. 그런데 외국인은 출입금지다. 힌두교인이라도 남자는 도티, 여자는 사리를 입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사원은 외벽의 조각상부터 분위기를 압도한다. 검고 흰 것이 마구 뒤섞인 형국인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복원 과정에서 희게 칠한 것이 몬순 계절에 내리는 비에 씻겨 다시 검어졌단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남녀의 성교 장면을 담은 조각상도 보인다.
사원 정면에는 케랄라 전통 양식의 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케랄라의 역사를 소개하는 인형과 음악당, 빗물을 활용한 냉방시설 등이 시선을 끈다. 중국과 유럽의 향신료 무역과 관련된 것도 많다. 궁전의 외관은 122마리의 웃는 표정의 말(馬)머리 조각으로 장식됐다. 실내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며 촬영도 금지돼 있다.
시 외곽에서 빈민촌을 지나게 됐다. 하지만 주민들 표정에서는 일그러진 일상을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고요와 평온이 흐른다. 사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삶의 색깔도 마찬가지다. 그 즈음에서 이런 의문에 휩싸인다. 내 삶은 어떤 빛깔일까. 인도에서 만나는 비일상성. 그것을 많은 여행자가 인도의 매력이라고 부른다. 더럽혀진 영혼을 씻고 걸어 온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것까지도. 물론 케랄라 같은 휴양지에서는 심신의 피로도 달랠 수 있고.
케랄라(인도)=남관수 기자 nyeditor@donga.com
|여행정보 |
◇케랄라 ▽찾아가기 △코치:싱가포르 항공(www.singaporeair.com/kr)이 싱가포르∼코치 매일 운항. 인천∼싱가포르 6시간, 싱가포르∼코치 4시간 소요. △트리반드룸: 싱가포르항공이 싱가포르∼트리반드룸 주 4회(화목금토) 운항. ▽기후=여름(2∼5월) 24∼34도, 몬순철(6∼9월) 20∼30도, 겨울(10∼1월) 18∼28도. ▽홈페이지=www.keralatourism.org
◇여행상품 ▽혜초여행사(www.hyecho.com)=아유르베다 체험마사지(3회)가 포함된 8일 일정 상품을 259만 원에 판매(수요일 출발). 02-733-3900
▼ 신비 요법 ‘아유르베다’ 비경 즐기며 심신 치료▼
인도 여행의 마무리 코스로 ‘아유르베다(Ayurveda)’ 요법의 건강 프로그램이 어떨지. 산스크리트어인 아유르베다는 ‘아유르(Ayur·생명)+베다(Veda·지식, 철학)’의 합성어다. ‘생명과학’을 뜻하는 전통 의술로 26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치료 기법은 약제를 몸의 특정 부위에 붓는 식물 요법에 마사지와 요가, 명상을 병행하는데 육체와 마음 그리고 영혼의 균형을 조절해 질병을 막아준다고 한다.
케랄라에도 아유르베다를 소개하는 휴양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아유르베다 리조트는 코발람 남쪽에 많은데 휴식 중에 치료를 겸할 수 있어 더없이 좋아보였다. 눈앞에 펼쳐지는 아라비아 해와 그늘 드리운 코코넛트리가 바다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의 이곳. 풀과 요가, 각종 레저시설이 갖춰져 있다. 의사 처방에 따라 아유르베다 코스가 결정되는데 주로 7∼14일 코스의 패키지상품이 유럽 관광객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아유르베다 리조트=www.somatheeram.in
케랄라(인도)=남관수 기자 nyedito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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