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변했다. 세상은 온통 자유여행 바람인데 제주도만큼은 단체여행이 붐이다.
소위 ‘학단’(학생단체) 수학여행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런 변화는 길에서도 감지된다. 줄지어 달리는 관광버스 대열이 그것이다. 학단에 점령된 제주도관광. 명암도 갈린다.
자유여행 덕에 십수 년 재미를 본 횟집과 식당, 펜션은 울상이다.
반면 자유여행 바람에 파리 날렸던 중대형의 예산절약형 숙소는 인상이 폈다. 항공사는 어떨까.
휘파람 소리가 드높다. 주중의 저조했던 탑승률을 학단 유치로 개선한 결과다. 또 하나 트렌드는 항공좌석 부족으로 목요일로부터 붐비는 주말 골프여행이다.
이 두개의 트렌드를 축으로 이어가는 제주도의 관광산업.
항공사만 방긋 웃을 뿐 일반 여행객(수요자)과 제주 섬의 관광업자(공급자) 모두가 불만이다.
골프 여행객 증가로 주말의 항공좌석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고 주말에 제주도로 쏟아져 들어오는 골프 여행객은 골프만 칠 뿐 관광은 뒷전이어서다.
그런 와중에 제주도를 찾았다. 듣던 대로 주중인데도 항공좌석은 거의 전편이 만석이었다. 비즈니스클래스까지도.
5월인데도 허니문커플은 보이지 않았고 해안도로도 한산했다.
한 가지 좋은 점도 있었다.
한적하고 고즈넉한 예전의 분위기로 돌아왔다고나 할까.
물론 장사 안돼 걱정인 도민들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5월 제주 섬은 ‘환상’ 그 자체다. 계절의 여왕이 빛나는 은빛 날개로 온 섬을 깔끔하게 쓸고 닦은 듯 신록은 더욱 푸르렀고 하늘은 더욱 청명했으며 바다는 더더욱 새파랬다.
세상의 모든 여행을 두루 섭렵한 내게도 5월 제주 섬의 빛나는 자연은 감탄사를 연발케 했다.
그러니 이 즈음에 제주도로 여행을 권유함은 내 의무이자 서비스가 아닐는지. 제주 섬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히든 플레이스‘(Hidden Place·감춰진 명소)로 여행을 떠난다.》
○‘바다에서 하늘로’ 치닫는 해안 드라이브 코스
이번 제주도여행은 좀 특이했다. 지도의 힘을 빌리지 않은 것과 지붕이 없는 컨버터블 차량으로 여행한 것이다. 차를 몰고 무작정 제주공항을 나왔다. 그리고 해안도로로 향했다. 때는 오전 9시, 방향은 서쪽. 따가운 5월의 해를 등지기 위해서다. 몇 년 새 많은 것이 변했지만 섬 가장자리로 일주하는 국도 12호선이 1132호선(일주도로)으로 바뀐 것은 이번에야 알게 됐다.
이 도로를 따르다보면 이호해수욕장 부근에서 처음으로 ‘해안도로’ 이정표가 보인다. 잠시 바닷가로 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제대로 된 해안도로는 하귀에서야 펼쳐진다. 하귀와 애월을 잇는 약 5km 구간인데 지구상의 어떤 해안도로에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기막힌 풍광이다.
대부분 여행객은 한결 같다. 달릴 줄만 알았지 차를 세우고 풍광을 감상하는 여유를 갖지 못한다. 세울 곳이 마땅찮은 점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다. 차를 달리다가 중엄리 공터에 세웠다. 그리고 검은 현무암들이 절벽을 이룬 바닷가로 나가 5월 제주 섬의 찬란한 자연을 두 눈에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다.
그 단애의 가장자리에 서니 아래로 ‘물통’이 보였다. 물통이란 해안가에서 샘솟는 용천수를 바위로 막아 담아두고 빨래도 하고 멱도 감는 제주의 독특한 물 공급처. 낚시를 하던 남자가 세수를 하고 있었다. 돌을 쌓아 물통까지 이어준 길은 그 자체가 해안산책로다. 바다 지천인 제주. 그런데도 그 바다에 서면 한 발짝이라도 더 물 가까이로 가려한다. 나 역시 같다.
물통으로 가려다가 돌에 새긴 안내문을 읽게 됐다. 이런 내용이었다. ‘새물’이라고 불리는 이 물통은 대섭동산에 둥지를 튼 설촌(중엄리)마을 주민의 식수원으로 1930년에 홍평식이라는 동장이 한겨울에도 위험천만한 돌무더기 바닷가에서 물을 길어야 했던 주민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바위를 발파해 방파제를 쌓고 그 안쪽으로 해수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공사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제주도에서 최고의 용천량을 자랑한다는 말도 덧붙여 있다. 해안가로 100m쯤 따라가니 절벽 가장자리로 너른 풀밭언덕이 펼쳐지고 거기에는 벤치가 마련돼 있다.
이번에 해안도로를 달리다보니 여기에도 무척 많은 변화가 있었다. 자그만 포구가 어항급으로 규모가 확대됐고 덕분에 조붓한 옛 모습은 찾아볼 길 없어 섭섭했다. 반면 그런 개발 덕분에 새 길이 생겨 이제까지는 볼 수 없었던 해안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곳도 있었다. 대표적인 곳이 북제주군 한경면의 풍력발전단지 해안이다.
신창과 고산을 잇는 제주 섬 서쪽의 이곳 해안은 높이 62m의 대형 풍력발전기 10여 기가 들어서면서 그 모습이 확 변했다. 그런데 검돌해안의 수변에 발전기를 설치하느라 가설한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반달 모양으로 휜 검돌해안의 전경을 차를 몰고 나가 감상할 수 있는 접근로 역할을 하게 됐다. 그래서 냉큼 찾아간 풍력발전단지의 해안접근로. 주변 전망이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물론 당시는 썰물 때여서 길이 드러나 갈 수 있었지만 밀물 때는 물에 잠기니 주의해야 한다.
그날 풍력발전단지 주변의 검돌해안 물 밭에서는 해녀들의 자맥질이 한창이었다. 해녀 할머니들이 얕은 물에서 따낸 것은 모두 성게다. 성게 철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해녀의 힘찬 발길질만이 유일한 소음인 이곳. 평화 섬이라는 제주의 이름이 이렇듯 빛난 적은 없었던 듯했다.
고산에서 일주도로를 타고 대정으로 향하다 보면 다시 해안도로 표지가 나온다. 제주도내에서 가장 길지 않을까 생각(약 10km)되는 고산∼일과 해안도로다. 동서남북 사방팔방으로 바다를 거느린 제주 섬. 그 섬의 바다는 방향마다 모습과 분위기가 다르다. 그래서 해안도로 역시 풍광이 천차만별이다. 고산∼일과의 서쪽바다는 해안선은 단순해도 앞바다를 장식한 여러 섬들로 인해 풍치가 살아난다. 그 섬이란 차귀도와 와도,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다. 석양의 해질녘 달리면 기막힐 것 같았다.
○‘평화의 섬’ 제주도
2005년 1월 정부는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물론 일반인은 잘 모르는 일이지만 거기에는 나름대로 깊은 의미가 있다. ‘제주도 4·3사건’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자는 뜻과 더불어 일제가 섬에 남긴 전쟁의 상흔을 보듬자는 뜻도 담겼다. 그 흔적이란 모슬포의 알뜨르 비행장과 격납고, 인간어뢰정 출진기지인 카이텐 동굴과 땅굴진지 등등. 원폭 투하로 전쟁이 속결되지 않았더라면 연합군의 상륙으로 전쟁터로 변해 20만 명이 죽어나간 오키나와와 같은 운명이 되었을지도 모를 제주도의 당시 형편을 아는 이라면 이런 군사시설이 얼마나 끔찍한 현실을 담고 있는지 알고도 남는다. 그래서 이 현장은 자동차로 돌아보는 일주여행길에 한 번쯤 둘러 볼 만한 답사여행지다.
알뜨르 비행장은 1926년부터 일제가 대륙 침탈의 공격기지로 쓰기 위해 닦은 군사비행장. 중일전쟁(1937년) 때는 일본 나가사키 현의 오무라 기지가 진주해 난징과 상하이를 공격하는 비행기를 발진시켰다. 또 부근에 남아 있는 격납고는 태평양전쟁 말기 가미가제 특공대의 전투기 은닉장소로 이용됐다.
알뜨르 비행장이 있는 모슬포와 송악산에는 이 밖에도 고사포진지, 어뢰정 기지 등도 있는데 이런 군사시설은 1944년 7월 사이판 함락 이후 연합군의 모슬포 상륙에 대비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잔디활주로(1.5km) 시설만 있는 알뜨르 비행장은 지금도 한국공군 수송기가 1년에 한 차례씩 비상이착륙 훈련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경면 청수리에는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건설한 지하요새가 탐방시설(가마오름 평화박물관)로 개발돼 있다. 땅굴진지는 미로처럼 연결돼 있지만 이 중 300m 구간은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제주국제평화센터(서귀포시 중문동)의 밀랍인형전시관도 꼭 한 번 들러볼 만한 곳이다. ‘정상들의 정원’이라고 명명된 이곳은 세계적인 밀랍인형관 ‘마담투소’처럼 실존 인물의 생생한 이미지를 담은 인형을 전시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 같은 유명인 것과 함께 한국의 역대 대통령(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빌 클린턴, 고이즈미 준이치로, 넬슨 만델라, 아웅산 수치, 간디, 테레사 수녀,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인형이 전시 중이다.
조성하 여행전문 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맛집 ▽일조가든(애월포구)=배추와 붉은 호박만 넣고 맑게 끓여내 전혀 비리지 않은 갈치 국(사진)이 일미. 한 상자 분의 갈치를 다듬어 잘라낸 머리와 꼬리로 육수를 우려낸 뒤 그 국물에 갈치토막을 넣고 즉석에서 끓여낸다. 6000원. 제주시 애월읍 애월리 064-799-8989.
▼BMW 드라이브-호텔1박 커플용 패키지 100만원대▼
BMW의 1억7120만 원(부가세 포함)짜리 럭셔리 컨버터블 뉴650i를 운전하면서 제주도의 멋진 해안과 산악도로를 질주하는 기분. 그러나 이제는 그저 영화의 한 장면에만 머물지 않는다. BMW코리아와 제주신라호텔(사진)이 손잡고 기획한 ‘BMW 파인드라이빙 패키지’ 덕분이다. 이 패키지를 구입한 고객은 오션뷰의 럭셔리 스위트룸에서 1박하면서 이 차를 시승하는데 이 밖에도 과일바구니에 수제초콜릿선물세트, 샴페인(돔페리뇽 혹은 루이나르)과 카나페가 제공된다.
아침식사(뷔페 혹은 룸서비스)와 디너(풀사이드 야외프라임뷔페), 공항∼호텔 셔틀서비스, 피트니스 및 사우나 이용권도 포함돼 있다. 가격(2인 1박·항공권 제외)은 주중 110만∼130만 원, 주말(금∼일) 125만∼155만 원(세금 봉사료 포함). 7월 15일까지 선착순 예약 접수 중.
BMW 뉴650i 컨버터블(소프트톱 4인승)은 6단자동변속기에 4.8L V8엔진(367마력)을 장착하고 정지 상태에서 5.6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달리는 고성능 차량이다.
◇BMW 파인드라이빙 패키지=문의 064-735-5505, 예약 1588-1142 제주신라호텔 www.shilla.net/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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