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 시간마저도 게으름을 피우는 빈둥거리기만 해도 활력이 솟는 섬

  • 입력 2008년 11월 12일 20시 19분


대한항공 K111편이 괌 국제공항에 일행을 부려놓은 것은 한국시간으로 밤 12시 30분. 인천공항을 이륙한 지 정확히 4시간 만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괌의 첫 인상은 한밤의 공기를 폐부로 집어넣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밤이라고는 해도 좀처럼 기온은 떨어지지 않아, 가을에 익숙해진 피부가 ‘이크!’하고 놀라는 것이 느껴진다. 괌의 공기는 탄산이 적당히 빠진 사이다처럼 후텁지근하면서도 달큰하다. 4시간의 야간비행으로 피로감을 호소하던 몸이 산뜻하게 눈을 뜬다. 미지근한 해풍에 부챗살처럼 가지를 편 열대수들이 부드럽게 흔들린다.

이번 여정의 목적은 두 가지로 잡았다. 하나는 관광지로서의 괌을 돌아보는, 전형적인 여행취재일정이고 다른 하나는 괌에서 열리는 코코마라톤 대회. 이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한국에서도 7명의 선수단이 함께 왔다. 모두 순수 마라톤 동호인들로 서울새벽마라톤대회에서 입상해 괌정부관광청의 초청을 받았다.

○15섬으로 구성…원주민 친절미 물씬

괌은 15개 섬으로 이루어진 마리아나 군도 중 최남단에 위치한 섬이다.

미국령이지만 비자 없이 15일간 머물 수 있다. 사이판, 로타, 팔라우, 마샬아일랜드, 축, 티니안, 코스래 등 인근 섬들과 함께 마이크로네시아에 속해 있다. 이들은 1년에 한 번 괌에 모여 큰 축제를 연다. 괌마이크로네시아 아일랜드박람회(GMIF)가 그것으로 코코마라톤과 같은 기간에 개최된다.

괌은 하와이와 더불어 일본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이다(괌은 1941년부터 31개월간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당연히 일본인이 연간 관광객의 대다수를 차지한다(한국은 2위).

괌의 공용어는 영어지만 어디를 가도 일본어가 넘친다. 한국인과 일본인을 구분할 수 없는 원주민들은 한국사람을 보면 “오하이오 ∼”하고 인사를 건넨다. 이럴 땐 그냥 씩 웃어주면 된다. 그러면 0.5초도 안 돼 “안뇽하세요∼”로 바뀐다. 괌 주민들은 대체적으로 열대지방 사람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에다 친절함이 몸에 배어있다. 악의가 없는 실수에 열 받을 이유는 없다.

괌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 우리나라로 치면 거제도만한 크기의 섬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관광지와 호텔이 중부 투몬과 아가나 지역에 밀집돼 있어 발품을 팔아 돌아다닐 만한 장소도 많지 않다.

○괌은 부족한 에너지 채우는 청량제 같은 곳

괌은 넘치는 에너지와 끼를 주체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장소는 아니다. 관광지 특유의 야단스러움과 밤 문화가 주는 이국적 활력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괌에는 괌이기에, 괌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확실한 매력이란 것이 있다. 같은 마이크로네시아의 섬들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괌만의 특성이다. 괌은 에너지가 넘치는 곳이 아닌, 부족한 에너지를 채우는 곳이다. 3박 4일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해변에서 빈둥거리는 것만으로도 방문객들은 방전된 배터리가 충전되듯 서서히 삶의 활력을 되찾는다.

그리하여 여정이 끝나갈 즈음에는 ‘아아! 슬슬 돌아가 일을 해볼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코코마라톤대회를 아세요?

코코마라톤대회는 새벽에 시작됐다. 선수들은 새벽 4시에 집결해 5시에 이파오비치 공원 출발선에 섰다. 코코마라톤의 ‘코코’는 괌의 국조(國鳥)인 코코새(뜸부기새의 일종)를 가리키는 것으로 오직 괌에만 서식한다는 희귀조이다. 당연히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 새를 보존하기 위한 일본인들의 지극정성이 대단하다. 이 대회 역시 코코새를 돕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열리고 있다.

괌|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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