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온천하러… 낙조보러… 산책하러… 전철이 불난다

  • 입력 2009년 2월 13일 02시 58분


■수도권 광역철도로 떠나는 하루여행

지하철은 어둡고 습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분주히 지하철 티켓을 끊는다. 출근을 하기 위해, 사람을 만나기 위해, 심지어 물건을 팔아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오전 11시만 되면 서울지하철 1호선의 연장 노선인 수도권 광역 전철 장항선(천안∼신창) 온양온천역 입구 계단에 사람들이 쏟아지고, 노을이 질 때쯤 ‘낙조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천공항철도(인천공항역∼김포공항역) 인천공항역이 분주해진다.

최근 서울지하철 연장 노선이 잇달아 개통되면서 과거 고속버스나 자가용으로 여행 갔던 곳들을 지하철 티켓 한 장으로 갈 수 있게 됐다. 광역 전철 장항선, 중앙선(팔당∼국수), 인천공항철도 주변이 관광지로 새롭게 거듭나고 있는 것. 그곳엔 어둠이 아닌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을까? ‘고민 고민’ 하지 말고 일단 티켓 끊어 떠나보자고!

○ 이번 정차역#1… 효도관광? 회춘관광! 온양온천역

서울역에서 2시간 40분. 거리는 111km. 시간과 거리 모두 만만치 않은 충남 아산시 광역 전철 온양온천역. 하지만 6일 오전 11시, 전동차 문이 열리자마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역 계단을 내려왔다. 역 밑에는 아산시청 직원들이 어깨띠를 두르고 관광객들에게 관광 안내책을 나눠주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15일 개통된 광역 전철 장항선 21.65km의 7개 역 가운데 가장 즐거운 비명을 부르는 역은 바로 온양온천역이다.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 등 3대 온천 밀집 지역인 이곳은 과거 하루 기차 이용객 수가 4000명이었지만 지금은 전철 이용객만 1만 명이 넘을 정도다. 온천을 즐기러 온 노년층이 대부분이지만 최근에는 젊은층도 늘고 있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는 바로 ‘외암 민속마을’(입장료 2000원). 역 앞 버스정류장에서 120번을 타고 20분 정도 가면 아산 출신의 조선후기 성리학자 외암(巍巖) 이간 선생이 살던 이 마을을 볼 수 있다. 2000년 중요민속자료 제236호로 지정된 이곳은 젊은층에게는 영화 ‘취화선’,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지로 알려져 있다.

글·사진=아산·안산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남양주·인천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출퇴근 교통카드가 여행카드 됐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상류층 가옥인 ‘아산 건재고택(牙山 建齋古宅)’. 비싼 집답게 오전 11시, 오후 3시 등 하루 두 차례만 대문을 열어준다. 대문 옆 학 모양의 연못과 소나무, 그리고 한옥 처마에 달린 추사 김정희 선생의 친필에서 양반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코스로 들른 곳은 전철 장항선 종점 신창역에 위치한 ‘세계 꽃 식물원’(입장료 4000원). 신창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도고온천 방면으로 401번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다보면 한적한 비닐하우스 마을이 나타난다. 총 5만2800m²(약 1만6000평)에 1000여 종이 넘는 식물이 숨쉬고 있는 이곳도 전철 개통 후 관람객이 25%나 늘었다. 특히 디지털 카메라를 목에 걸고 사진을 찍는 중장년층 손님들이 많아졌다.

허기질 때 식당에 들러 베고니아, 비올라 등 식용 꽃잎을 넣은 ‘꽃비빔밥’(5000원)을 먹는 것도 별미다.

당일치기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바로 온천. 최근 재개장한 아산온천 내 ‘아산 스파비스’(평일요금 2만9000원)는 달라진 아산 온천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온천욕 외에 파도타기나 수영도 즐길 수 있어 젊은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국승섭 아산시청 문화관광과 관광진흥팀장은 “한 해 평균 관광객이 40만 명이었으나 올해는 30% 늘어난 52만 명이 다녀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800원의 지하철 티켓을 끊기가 쉽지는 않다. 전철 안에서 2시간 40분을 참아야 한다는 점, 배차 간격이 20∼30분이나 된다는 점, 심지어 음식점이 부족한 것까지 해결할 문제도 많다.

○ 이번 정차역#2… 예술 도시! 안산

최근 예술 도시로 변모했다는 경기 안산시를 찾기 위해 1600원짜리 지하철 티켓을 끊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지 정확히 1시간 10분 후 도착한 공단역. 으스스할 만큼 인적이 드문 화랑유원지 내 ‘경기도 미술관’부터 눈에 띄었다. 개관한 지 2년 반밖에 안 된 신생 미술관임에도 지난해 말부터 열리고 있는 크로스장르 건축 제안전(展) ‘경기도미술관@안산’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안산 시화호의 미래 도시화’가 주제인 건축전은 3명의 유명 외국 건축가들과 국내 건축가인 조민석 씨가 참여해 미래의 안산 도시를 표현했다.

입장료가 무료여서 그럴까? 이 미술관은 평일임에도 많은 관람객이 찾았다. 입구에 전시된 중국 건축가 마옌쑹의 램프 벤치 ‘아름다운 마음’, 그 옆 벌집처럼 네모난 상자가 늘어선 덴마크 건축가 비야르케 잉겔스의 ‘도시의 다공성’ 등의 건축물들이 돋보였다. 안산을 주제로 해서 그럴까? 미술관을 넘어 이곳은 마치 안산의 대표 관광지처럼 느껴졌다. 이 전시회는 15일에 끝날 예정이었지만 반응이 좋아 상시 전시될 예정이다.

미술관 옆 호수도 볼거리 중 하나지만 하천을 따라 펼쳐진 산책로 역시 ‘선천적’ 예술 작품이다. 이어폰을 꽂고 그 길을 따라 15분 정도를 천천히 걷다 보면 우아한 클래식 선율이 흘러나오는 ‘안산 문화 예술의 전당’이 나온다. 공연을 하지 않는 평일에도 쇼팽의 ‘야상곡’부터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까지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안산은 그간 녹지 공간이 많은 곳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고잔역 지상철 교각 하부에서 사진전, 음악회 등 공공 프로젝트를 진행할 정도로 예술에 눈을 떴다.

강범식 안산역장은 “MT 가는 대학생들을 위한 문화 열차 등 문화 예술을 통한 관광 마케팅을 계획 중”이라고 말했다.

○ 이번 정차역#3… 도시락 들고, 아빠 손잡고! 팔당역

지난해 말 광역전철 중앙선 5.6km가 개통되면서 운길산역 주변은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나들이 코스로 주목받고 있다.

용산역에서 팔당역까지는 55분. 교통카드 요금은 기본요금에 500원이 추가로 붙었다. 팔당역에 가까워지면서 열차 오른쪽 차창에는 두물머리에서 합쳐진 한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팔당역에 도착한 후 먼저 들른 곳은 다산유적지. 택시로 10분이 채 되지 않아 도착한 이곳은 다산 정약용의 생가를 유적지로 꾸며놓았다. 작은 박물관과 문화관 등 교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팔당역 다음 운길산역에 내려서는 ‘남양주 영화 종합 촬영소(입장료 어른 3000원, 어린이 2500원)’에 갈 수 있다. 역 앞 무료 셔틀버스(1일 5회 운영)로 갈 수 있는 이곳에서 ‘공동경비구역 JSA’의 판문점 세트를 비롯해 ‘왕의 남자’, ‘음란서생’ 등의 세트를 볼 수 있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간판이 거의 없다는 것. 한옥 세트도 직접 들어가 볼 수 있고, 판문각 계단에 올라가 폼을 잡아 볼 수도 있다. 촬영소 한가운데 있는 영상 지원관에는 직접 특수효과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시설도 있다.

관람시설이 아닌 강변의 호젓한 산책을 원한다면 양수역을 추천한다. 걸어서 7∼8분 거리인 두물머리 산책코스로 갈 수 있는 연꽃 식물원인 ‘세미원’을 돌아볼 수 있다. 관람을 원하면 인터넷 홈페이지(www.semiwon.or.kr)에서 예약을 해야 한다.

이 부근을 나들이 장소로 택한다면 도시락을 싸오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에 부담 없는 가격의 식당은 많지 않기 때문. 영화촬영소 내 매점에서도 간단한 간식거리만 팔고 있다.

○ 이번 정차역#4… 로맨틱한 노을! 인천국제공항역

‘1박’이 쉽지 않은 연인들에게 낙조여행은 사치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공항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공항철도를 단순히 공항에 가기 위한 교통수단 중 하나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내에 하나뿐인 ‘해양횡단철도’를 타고 연인과 함께 붉게 물드는 바다를 감상한다면?

인천공항철도 김포공항역에서 열차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역까지 가는 데 드는 시간은 32분, 요금은 3200원이다. 개찰구를 빠져나간 후 인천공항 청사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 2번 문으로 나가면 버스 정류장이 있다. 여기서 111번, 301번, 302번, 306번 등 버스를 타면 이 버스가 영종도 남서쪽 해안인 거잠포∼마시란∼선녀바위해변∼을왕리 해수욕장∼왕산해수욕장 등을 차례로 거친다.

영종도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은 을왕리 해수욕장. 하지만 영종도를 잘 아는 사람들은 상업시설이 들어선 을왕리보다 다른 해변을 더 좋아한다.

그중 한 곳이 서해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거잠포 해변. 서해의 일출이라니 뭔가 이상하지만 해가 분명 바다에서 떠오른다. 지형이 반도처럼 바다 쪽으로 쑥 튀어나왔기에 서해안이지만 동쪽을 바라볼 수 있다.

밋밋한 바다 외에 다른 풍경을 함께 감상하고 싶다면 선녀바위해변이 제격이다. 해안가 작은 절벽에 치마폭을 두른 여인의 형상을 한 선녀바위가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떨어지는 햇빛을 받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이다.

선녀바위 해변은 아직 인적이 뜸한 해변이므로 그동안 애정 표현에 목말랐던 연인이라면 떨어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다소 과감한 ‘애정행각 실루엣 사진’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는 연인이라면 운서역이 기다리고 있다. 운서역 바로 뒤편에 있는 백운산은 해발 256m 정도 되는 야트막한 산이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그 정도 산이야 집 앞에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은 정상에 오르는 순간 사라진다. 날씨가 좋은 날 백운산 정상에 올라서면 인천공항과 실미도, 무의도 등 인근 섬들뿐만 아니라 강화도 마니산까지도 한눈에 들어온다. 섬 한가운데 들어선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아산·안산=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남양주·인천=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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