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와 함께 하는 에코 트레킹]천리포 숲길 걷기

  • 입력 2009년 6월 26일 02시 58분


《이제는 나도 도가 통한 모양이다. 구천 리 먼 길, 그것도 산길을 단 한 시간 만에 주파했으니. 천리포와 만리포, 두 포구를 잇는 국사봉 산길을 두고 하는 말인데…. 물론 우스갯소리다. ‘구천 리’란 만리(포)에서 천리(포)를 뺀 수치. 산길의 실제 거리는 십리(4km) 정도다. 천리포와 만리포는 나란히 어깨를 맞댄 이웃이다. 곶(串)처럼 바다로 돌출한 동산만 없었다면 한 해변이 될 수도 있었다. 그 해변은 무성한 숲으로 뒤덮인 얕은 산자락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그 산은 높지 않다. 정상(국사봉)이라고 해봐야 121.8m니까. 높지는 않아도 그 능선은 길다. 두 해변의 배후를 자처하듯 해안을 따라서 나란히 가로로 길게 누운 형국이다. 그런 만큼 만리포, 천리포 두 해변은 국사봉 한 산에서 태어난 형제다.》

천리포∼만리포 9000리 1시간에 걸을 수 있다?

나는 새벽 드라이브를 즐긴다. 아침부터 북새통을 이루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빠져나가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도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매력은 첫새벽에 만나는 멋진 풍광이다.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여명 속의 도시, 침잠 속에 흐르는 한강 모습이다.

상큼한 새벽 공기를 가르고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찾아간 충남 태안. 천리포는 반도 태안에서도 서북쪽에 있다. 천리포에는 최근 들어 여행객의 발길이 갑자기 잦아졌다. 천리포 수목원 덕분이다. 천리포 수목원이라면 민간인이 조성한 국내 최초의 수목원, 그리고 한국에 귀화한 미국 출신 민병갈 씨(2002년 작고)가 근 40년간 심고 가꾸고 다듬어 세계적인 수목원으로 키워낸 바로 그 현장이다.

그 수목원이 지난 봄 온전하게 개방됐다. 연간 6개월만 공개했던 이전과 달리 연중 내내 공개된 것이다. 수목원이 자리 잡은 곳은 천리포 해변. 국사봉 산자락이 바다로 잦아드는 지형의 끄트머리, 그러니까 숲과 해변이 만나는 접점이다.

그 수목원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은 천리포 방파제다. 거기에 서면 천리포 해변과 포구마을, 그리고 천리포를 둘러싼 국사봉 산자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온통 소나무로 뒤덮인 이 산. 천리포 해안을 병풍처럼 두르는데 수목원은 그 숲에서도 한가운데, 그리고 바다에 가장 가까이 자리 잡았다. 천리포 바다풍치가 더없이 싱그러운 것은 바로 이 숲 덕분이려니.

방파제에서 만난 주민에게 물었다. 혹시 수목원 뒤편의 국사봉 산자락에는 숲길이 없는지. 그랬더니 ‘아니 길 안난 산이 어디 있느냐’면서 그 들머리를 알려주었다. 그곳은 천리포 수목원의 북단에 자리 잡은 별도 건물인 생태교육관 앞. ‘천리포1길’이라는 골목길의 주택을 돌자 밭고랑 옆으로 산길이 보였다. 그 길은 내내 산자락의 등마루를 따라 남쪽 만리포로 이어진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오른 산길. 숲 속은 나무그늘이 초여름의 따가운 땡볕을 완벽하게 막아 주어 시원했다. 길은 갈색으로 변한 해송의 바늘잎 낙엽 천지.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았다는 표징이다. 나 역시 그 길을 가는 한 시간 반 내내 딱 두 사람을 보았으니까. 능선 길에 오르자 바다와 하늘이 언뜻언뜻 나무 사이로 보였다. 경사도 별로 없고 솔 내음 상쾌한 이 숲. 이렇듯 수월한 길이라면 온 종일이라도 걸을 것 같았다.

20분쯤 걸었을까. 100m 정도 이어지는 가파른 길이 나타났다. 숨을 몰아쉬고 오른 이 고개. 이 산의 정상 ‘국사봉’이었다. 그곳은 헬기 착륙을 위해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나대지였다. 그러다 보니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는 그만이다. 태안을 십여 차례 드나들었지만 이렇듯 전망 좋은 곳은 보지 못했다. 이 정도면 태안 최고의 전망대라고 부를 만했다.

그 경치를 보자. 천리포 포구와 포구 앞 닭섬, 방파제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그 왼편으로는 반달모양으로 휜 만리포의 금빛 모래해변과 송림이 숲에 가려 반쯤 보였다. 오른쪽 천리포와 왼쪽 만리포, 그리고 이 두 포구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숲. 여기가 천리포 수목원이다. 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뒤로 돌아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산 아래로 작은 만(灣) 형태의 바다와 그 바다를 메워 조성한 저수지와 논이 이룬 멋진 경치가 기다린다. 그리고 골에 갇힌 바다 물 건너로 아름다운 금빛 모래해변이 보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는 신두리 사구해변이다.

헬리포트에는 이정표가 있는데 이렇게 쓰여 있다. ‘만리포 2.2km, 천리포 1.5km.’ 실제로 만리포(주차장)까지는 3km다. 이정표 옆으로 바다를 향해 숲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 있다. 수목원으로 가는 길이다. 다시 목적지인 만리포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숲길은 내내 지금과 마찬가지로 숲 그늘 속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도중에 전망 포인트가 두 개 더 나타났다. 만리포의 모습이 좀 더 확연하게 조망되는 전망대다.

산길을 내려서니 만리포해수욕장 입구 주차장이 나왔다. 해변마을은 아스팔트 공사 등으로 새롭게 단장돼 있어 깔끔했다. 해변에는 ‘만리포 사랑 노래비’와 더불어 ‘서해의 기적 위대한 국민’이라고 한승수 국무총리가 쓴 기념비가 있다. 그리고 그 앞에 ‘다시 태어난 서해안’이라는 조형물이 있다. 123만 명 자원봉사자의 활동을 기록해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는 해변 트레킹이다. 만리포 해변을 걸어 천리포까지 가는 코스다. 나는 땡볕 아래서 걸었지만 해질녘 노을에 물든 하늘 아래 걸으면 기막힐 듯했다. 가는 길은 쉽다. 해변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단 만리포에서 천리포 해변으로 질러가는 길목은 알아두어야 한다. 그 길목은 두 해변을 가로막은 돌출지형의 언덕. 교회종탑(곤지암 교회 만리포 수양관)이 이정표다.

그 언덕에 올라서보니 펜션 촌이다. 천리포와 만리포 두 해변을 거느린 기막힌 장소다. 종탑을 지나 콘크리트축대를 밟고 해변으로 내려가 다시 천리포 수목원의 콘크리트방벽을 따라 걷는다. 내가 그 해변에 당도했을 때는 썰물로 물이 나간 뒤였다. 그런데 그 모습은 오전 밀물 때와 전혀 달랐다. 닭섬은 드러난 모래톱으로 해변과 연결돼 육지섬이 됐고 그 앞에서는 주민 10여 명이 모여 조개를 캐고 있었다. 이런 한가로운 오후의 포구마을 풍경이 더없이 좋았다. 만리포, 천리포 해변 산책로는 길이가 3km 정도 된다.

태안=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 태안 맛 집

태안하면 꽃게, 꽃게하면 천리포였다. 아쉽게도 지금 천리포의 꽃게 잡이는 시들하지만. 그래도 태안에는 그 꽃게를 옛날 맛 그대로 먹을 수 있는 맛집이 있다. 태안 시내 토담집(사장 윤순철·여)이다. 윤 씨는 아직도 이웃한 전라도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는 태안토박이. 태안에서 식당을 낸 것이 33년 전인데 당시나 지금이나 간장에 담근 꽃게장을 곁들인 밥집인 것은 같다. 달라졌다면 거기에 ‘우럭젓국’을 하나 더한 것인데 그래서 메뉴는 단 두 가지다.

윤 씨의 꽃게장(사진)은 특징이 있다. 봄 꽃게만 쓰며 그리 짜지 않고 비린 맛이 덜하다. 간장도 직접 담가 쓰는데 비린 맛은 간장에 벌집을 넣어 없앤다. 우럭젓국은 소금에 절인 봄 우럭을 살짝 말렸다가 황태해장국처럼 끓여 내는 것인데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 간장게장(1인분 한 마리)은 2만1000원, 우럭젓국(1인분)은 9000원. 게장은 택배 판매(1kg 6만 원)도 한다. 위치는 태안등기소 건너편. 041-674-4561


|트래킹 정보|

◇찾아가기 ▽만리포=서해안고속도로∼서산 나들목∼국도 32호선∼서산시내∼태안∼소원∼만리포 ▽천리포=만리포에서 2km

◇트레킹 ▽국사봉 산길=해변 가의 산등성 숲길 코스 △거리: 4.5km △소요시간: 1시간 반 △지형: 능선 △난이도(1∼5): 가장 쉬운 1 △특징: 그늘이 짙게 드리운 소나무 숲. 해변 전망이 좋아 망원경 지참을 권함 ▽해변 걷기=만리포와 천리포 해변을 이어서 걷는 코스 △거리: 3km △지형: 모래사장 △난이도: 1 △특징: 해변 산책 느낌. 해질녘 강추 ▽주차 △천리포: 수목원 생태교육관 앞 공터(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1리 234-11) △만리포: 입구 주차장

◇들를 곳 ▽천리포 수목원=박토의 민둥산을 숲 천국 꽃 대궐로 바꾸어 놓은 민병갈 원장의 평생 삶이 녹아든 현장. 잘 가꿔진 숲과 정원, 그리고 천리포 해변과 바다를 두루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곳이다. 관광용이 아니라 연구용으로 조성한 학술적 시설이어서 일체의 음식물과 촬영용 삼각대를 가져갈 수 없다. 설 추석 명절을 제외한 연중무휴 공개. 입장료 7000원. 041-672-9982, www.chollipo.org

◇트레킹 여행상품 ▽승우여행사(www.swtour.co.kr)=천리포로 트레킹을 다녀오는 하루 일정 여행상품을 판매한다. 수목원도 들른다. 7월 4, 5일 출발(서울 광화문, 잠실). 참가비 4만3000원. 아침(간식)과 점심(동강할미꽃마을 제공 식사), 여행자보험, 안내비 포함. 02-72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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