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어질… ‘철없는’ 여인 40代가 가장 많아

  • 입력 2009년 10월 5일 02시 58분


임신과 출산을 겪은 뒤 빈혈을 호소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폐경기 중년여성이 많이 어지럽다면 단순한 철분 부족이 아니라 위나 대장 같은 소화기관에 종양이 생겼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임신과 출산을 겪은 뒤 빈혈을 호소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폐경기 중년여성이 많이 어지럽다면 단순한 철분 부족이 아니라 위나 대장 같은 소화기관에 종양이 생겼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출산-생리로 철분 부족 누적
임신 전부터 복용해야 예방
8년 새 전체환자 60% 증가
소화기내 종양도 빈혈 유발

빈혈에 잘 걸리는 사람은 주로 20대 여성일 것 같지만 사실 국내에서 빈혈로 가장 고생하는 사람은 40대 중년 여성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지난 8년간 ‘빈혈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환자를 분석한 결과 2001년 27만5055명이던 환자는 지난해 44만1869명으로 60% 이상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진료 받은 환자 가운데 40대가 10만1000명으로 1위였고 30대가 8만3983명으로 뒤를 이었다. 성별로는 여성이 34만2999명으로 남성(9만8870명)보다 3.5배 더 많았다.

○ 생리·임신·출산으로 ‘어질어질’

여성이 남성보다 더 빈혈이 잘 생기는 이유는 생리와 임신 때문이다. 사람의 몸에는 약 5L의 혈액이 순환하고 있다. 혈액 내 적혈구에 있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물질은 신체 구석구석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데 헤모글로빈이 잘 만들어지려면 체내 철분과 엽산이 충분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르면 성인 남성의 경우 헤모글로빈이 13g/dL 이하, 여성은 12g/dL 이하일 경우 빈혈로 본다.

그러나 여성은 한 달에 한 번씩 약 5일간 생리를 하면서 몸속의 철분이 계속 빠져나간다. 게다가 몸속에 태아가 생기면 철분을 나눠 써야 하기 때문에 빈혈이 일어나기 더 쉽다. 임신부가 철결핍성 빈혈에 걸리면 어지럼증과 함께 심장 맥박이 빨라지기도 한다. 또한 얼굴, 손바닥, 손톱이 창백해 보일 수 있으며 피부의 탄력이 떨어지거나 모발이 거칠어지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무엇보다 임신부의 철분 부족이나 빈혈은 조산의 위험을 증가시키고 저체중아 출산 확률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또한 빈혈이 있는 여성은 정상 여성보다 감염과 같은 출산 합병증의 발생이 더 높다.

맹호영 일산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여성은 임신과 출산을 겪은 뒤 철분 부족 현상이 계속 누적되는데 40대에 접어들면서 빈혈로 나타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임신을 계획했을 때부터 철분과 엽산이 들어 있는 임산부 전용 비타민제를 복용할 것을 공식적으로 권장한다. 대다수 임신부는 임신을 확인하고 난 직후부터 철분과 엽산을 섭취하기 시작하지만 몸속에 축적되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임신하기 최소 1개월 전부터 섭취하는 것이 좋다.

○ 소화기관에 종양 생겼는지 확인해야

빈혈인 사람은 쉽게 피로해지고 조금만 운동을 해도 숨이 차고 나른해진다. 집중력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심하면 손발이 저릴 수도 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얼굴이 창백하다거나 누렇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면 빈혈을 의심해봐야 한다. 생리량이 많은 여성부터 편식을 하는 어린이, 식사량이 적은 노인에게도 빈혈은 나타날 수 있다. 선천적으로 적혈구가 잘 생기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밥을 제대로 먹지 않고 술을 마시는 등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에 종종 나타나기도 한다.

빈혈 하면 어지럼증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어지러운 증상은 빈혈 이외에도 다른 질병 때문에 부차적으로 오는 증상일 경우가 많다. 이때 혈액검사와 골수검사로 어지럼의 원인을 빨리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치질, 위궤양, 위장관(위, 소장, 대장을 포함하는 소화기관) 출혈로 철분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빈혈은 위암이나 대장암이 발병할 때 가장 먼저 나타나는 징후이므로 중년 남성이나 폐경기 여성이라면 반드시 위나 대장에 종양이 생긴 것은 아닌지 검사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 철분약은 공복 상태에서 복용

단순히 철분이 부족한 철결핍성 빈혈이라면 먹는 철분약이 도움이 된다. 식사를 하기 전 공복상태에서 약을 먹는 것이 효과가 좋으며 제산제나 우유와 함께 먹으면 효과가 떨어진다. 또 빈혈증상이 나은 것 같아도 6개월간은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

차를 자주 마시면 차 속의 타닌 성분이 철분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에 식사 도중이나 식후 1시간 이내에는 홍차, 녹차, 커피는 자제해야 한다. 평소 혈액을 만들고 철분 흡수를 돕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고 선지, 간, 살코기, 계란노른자, 미역, 건포도, 잣, 콩류를 꾸준히 섭취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이제환 울산대 의대 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 교수, 바이엘 헬스케어 엘레비트)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빈혈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위장질환이나 각종 암이 원인이 돼 생기는 경우가 있으므로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식사는 매일 규칙적으로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한다.

―식사 도중이나 식후 1시간 이내에 철분 흡수를 방해하는 커피, 홍차, 녹차, 청량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혈액을 만들고 철분 흡수를 도와주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는다.

―철 결핍성 빈혈일 경우 간 선지 살코기 계란노른자 굴 조개 미역 건포도 잣 콩류를 충분히 먹는다.

―의사와 용량 및 기간을 상의한 뒤 철분제제를 먹는다.자료: 서울아산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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