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isure]등산복도 첨단시대 “겨울산이 즐겁다”

  • 입력 2006년 12월 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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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원터골에서 만난 등산객의 복장이 예사롭지 않다. 청계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는 이곳 원터골에서 높이 538m의 매봉까지 왕복하는 코스로 4.8km. 2시간 30분이면 충분한 가벼운 산행 코스지만 독일 명품 래키 스틱에 모자, 선글라스, 고어텍스 재킷, 전문가용 배낭까지 구비한 복장은 가히 ‘히말라야’급이다(왼쪽 위). 서울 강남지역에 위치한 청계산은 등산 패션의 중심이다. 단체 등산객들의 바지는 검은색 일색이다. 이훈구 기자
청계산 원터골에서 만난 등산객의 복장이 예사롭지 않다. 청계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는 이곳 원터골에서 높이 538m의 매봉까지 왕복하는 코스로 4.8km. 2시간 30분이면 충분한 가벼운 산행 코스지만 독일 명품 래키 스틱에 모자, 선글라스, 고어텍스 재킷, 전문가용 배낭까지 구비한 복장은 가히 ‘히말라야’급이다(왼쪽 위). 서울 강남지역에 위치한 청계산은 등산 패션의 중심이다. 단체 등산객들의 바지는 검은색 일색이다. 이훈구 기자
《초겨울의 쌀쌀한 기운이 완연한 2일 오전 9시경.

서울 서초구 양재 나들목을 지나 청계산 원터골 입구까지 이어지는 1km가량의 진입 도로는 주말 등산객이 타고 온 승용차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높이 618m로 험하지 않은 산세, 서울 강남지역 등산객이 대거 몰리는 청계산은 ‘등산복 패션의 압구정동’이다.

전문 산악인 출신으로 현재 등산 의류제품을 소개하는 잡지 월간 아웃도어를 발행하는 박요한(36) 대표는 “등산복 의류업체에 청계산은 도봉산과 함께 ‘마케팅의 최전선’”이라고 설명했다.》

청계산 입구에는 등산복 매장 8개가 있는데 대부분 일반 등산객을 위한 고급 브랜드 위주의 매장으로 짜여 있다.

반면 일반 등산객부터 전문 산악인까지 모두 찾는 도봉산은 입구에 30개 이상의 매장이 자리 잡았다. 취급 물품은 저가부터 고가품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청계산에서는 볼 수 없는 전문 산악장비까지 갖추고 있다.

국내 등산복 시장에 난립한 수십 개의 국내외 브랜드 가운데 승자는 단연 외국 브랜드다. 올해 등산복 시장 규모는 2조 원가량. 외국 브랜드(라이선스 계약 포함)가 60% 이상을 점유한 상태에서 비중을 점점 더 키우고 있다.

이런 추세는 현장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날 부인과 함께 청계산을 찾은 김영우(45·서울 용산구 동부이천동) 씨의 복장을 살펴보자. 이탈리아 브랜드 멜로스의 윈드스토퍼 소재 재킷(약 50만 원), 미국 브랜드 노스페이스의 검은색 등산바지(약 14만 원), 독일 브랜드 노바 등산화(약 25만 원), 독일 브랜드 래키 등산 스틱(2개 약 28만 원), 미국 오클리 선글라스(약 20만 원), 프랑스 브랜드 에이글의 모자(약 5만원), 노스페이스 배낭(약 8만 원), 배낭 속에 여분으로 가져온 프랑스 밀레 재킷(40만 원). 김 씨에게 국산 브랜드는 습기 제거 기능이 있는 코오롱 셔츠뿐이었다.

외국 브랜드 비중이 늘어났다면 고가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노스페이스 청계점의 최승철 지점장은 “매장에 들어와 비싼 것만 찾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외국 브랜드는 얼마나 비쌀까. 청계산의 독일 브랜드 쇠펠 매장에서 고어텍스 최고급 소재인 XCR를 쓰고 조난 시 위치추적용 센서가 부착된 재킷은 149만6000원이다. 지난해 겨울을 앞두고 나왔는데 지금까지 이 매장에서만 12벌이 팔렸다. 최고급 거위 털을 쓴 105만 원짜리 다운재킷은 지난해 겨울 40벌이 팔렸다.

등산복을 비싸게 하는 추진력은 첨단 기능성 소재. 밖에서 물이 스며드는 것을 막으면서(방수) 땀을 밖으로 배출(투수)하는 특수소재 시장의 90% 이상을 고어텍스가 점유하고 있다. 고어텍스는 투습 기능을 30% 향상시킨 XCR, 방수 기능은 없지만 바람을 막아주면서 투습 기능이 있는 윈드스토퍼, 비슷한 기능에 더욱 가볍게 만든 팩라이트 등의 첨단소재를 선보이며 완제품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기능성이 보편화되면서 브랜드의 경쟁력이 점차 디자인 쪽으로 옮겨 가는 추세다. 이에 따라 화려한 디자인을 앞세운 유럽 브랜드가 요즘 눈에 띈다. 아크테릭스(캐나다), 마무트(스위스), 버그하우스(영국), 파타고니아(미국), 몽벨(일본), 라푸마(프랑스) 등 세계 각국 명품 브랜드가 대부분 국내에 들어왔다.

외국 브랜드가 시장을 빠르게 장악한 이유 중 하나는 경쟁력을 잃은 국내 업체들이 앞 다퉈 외국 브랜드와 라이선스나 직수입 계약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수십 개의 브랜드가 있는데도 등산바지 색상의 70% 이상은 검은색이라는 점. 국내 업체들이 최근 몇 년간 원색의 다채롭고 밝은 색상을 시도하고 있지만 상의에 그칠 뿐 하의는 검은색이 여전히 대세다. 청계산과 도봉산 일대 어떤 매장을 찾아도 밝은 색의 등반바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등산 의류에서 ‘블랙’의 선호는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경향.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다양한 색상이 존재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이 내놓는 가설이 있다. 등산인구가 늘면서 전문 산악인들이 차별화를 위해 검은색을 선택하자 ‘전문가 따라잡기’의 대중심리 때문에 블랙 일색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전문 산악인들이 오히려 짙은 색을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비싼 브랜드를 찾으면서도 개성 없이 특정 색 일색인 국내 등산복 패션 경향은 한국인의 일반적인 ‘몰개성적 합일주의’에 맞닿아 있다. 한국인에게 이제 등산복은 집이나 자동차처럼 자신의 지위를 상징하는 ‘도구’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셈이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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