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끼리만 커플룩을 입는 게 아니다. 부모와 자녀도 닮은 얼굴, 닮은 패션으로 커플룩의 진수를 선보일 수 있다. 요즘은 패션에서 세대 차이가 사라지고 있는 ‘논 에이지(Non Age)’ 시대다. 엄마와 딸이 옷을 바꿔 입고, 아버지와 아들이 색깔을 맞춰 입는 가정도 적지 않다.
올 설에는 패션을 통해 세대의 벽을 허무는 것은 어떨까. 한복 차림으로 거리에 나서기가 꺼려진다면 커플룩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반드시 똑같은 옷일 필요는 없다. 드레스코드를 정해 따르면 충분하다. 예컨대 ‘레드’를 드레스코드로 정했다면 넥타이 하나라도 신경을 써서 빨간색으로 맞추면 된다.
○딸-어머니…숙녀처럼 소녀처럼
“너 왜 벌써 들어왔니? 집에 없는 것처럼 방에 들어가 있어.”
김선옥(48) 씨는 딸 전혜진(19) 씨를 보고 놀랐다. ‘보고 싶다. 언제 오니’라고 열심히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 딸이 연기하는 데 방해가 될까봐 전화는 못하겠고…. 그래서 문자로 ‘감동’을 주고 싶었다.
전혜진 씨는 1999년 SBS 드라마 ‘은실이’의 주인공 역을 맡은 아역스타. 최근엔 KBS 드라마 ‘일단 뛰어’에서 여순경으로 열연 중이다.
딸은 중학생 시절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했다. 고 2가 되자 딸은 돌연 연기자를 평생직업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스타보다 배우가 되고 싶어요. 연극무대 밑바닥에서 시작하더라도 꼭 연기자가 될래요.”
딸의 당돌한 선언에 엄마는 감동을 받았다. 저 정도 각오면 괜찮지 않을까. 믿어 주기로 했다. 지난해 여름 모녀가 함께한 일본 여행에서 서로의 믿음은 더 돈독해졌다.
“엄마는 제가 진지하게 말하면 항상 믿어 줘요. 그게 큰 힘이 돼요.”
요즘은 엄마와 딸이 다툴 때가 많다. 남들은 ‘우리 딸이 제일 예쁘다’고 하는데 엄마는 계속 ‘피부 관리를 해라’, ‘표정이 어색하더라’ 등 잔소리를 한다. 그래도 엄마가 아니면 누가 그런 충고를 해 줄까. 신경 써 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 모녀(母女) 코디는 이렇게
소녀 같은 얼굴이 꼭 닮은 모녀에게 스타일리스트 김윤희 씨는 ‘여성스럽고 따뜻한 스타일’을 추천했다. 이른바 ‘로맨틱 내추럴’ 콘셉트다. 앳된 딸은 숙녀처럼 성숙해 보이고, 엄마는 소녀처럼 젊어 보이는 스타일이다.
딸은 체크 리본 블라우스에 검정 잠바 원피스를 입고 굽이 높은 샌들을 신었다. 엄마는 흰색 바지에 검정 흰색 금색 줄무늬의 카디건을 입고 금색 구두를 신었다. 딸의 체크 블라우스와 엄마의 카디건 색깔이 어울린다.
엄마와 딸이 함께 스커트를 입어 낭만적인 분위기를 살릴 수도 있다. 딸은 좀 더 성숙한 이미지의 원피스를, 엄마는 좀 더 발랄한 이미지의 체크무늬 스커트를 시도했다. 중년 여성이 주로 입는 스커트 길이보다 짧은 무릎 위 길이라 소녀 같은 느낌이다.
새 옷을 차려 입고 팔짱을 낀 모녀는 서로 마주보며 말했다.
“힘들고 스트레스 받으면 다 엄마에게 풀어. 그리고 좀 더 여성스러워지고! 엄마는 널 믿는다.” “이제 스스로 할 수 있으니까 엄마는 엄마 인생을 더 재미나게 살아야 해. 그동안 믿어 줘서 고마워요.”
○아버지-아들…봄빛처럼 환하게
25년 넘게 살고 있는 단독주택은 아버지와 아들, 할아버지와 손자를 이어주는 소중한 공간이다. 둘째 아들 김유승(37) 씨 가족은 아버지와 ‘따로 또 같이’ 산다. 아버지가 1층, 아들이 2층이다.
3층 옥상은 가족을 이어주는 곳이다. 솜씨가 좋은 아버지는 옥상에 정원을 꾸미고 고기 굽는 곳도 만들었다. 배추가 자라면 다 같이 모여 일년치 김장을 담근다.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들이 노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직장에 다니고 분가까지하면 아버지와 좀 어색해지기 쉽거든요. 아버지는 집안 곳곳을 수리하고 소품 만드는 걸 좋아하고, 저도 아버지와 일하는 게 즐겁습니다. 어릴 때와 다를 게 없어요.”
아버지와 아들은 신문으로도 연결돼 있다.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던 아버지는 40여 년 동안 모은 신문을 동아일보 신문박물관에 기증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모아 둔 신문 속에서 4·19혁명 당일 신문을 찾아 읽으며 아버지 세대를 이해했다.
“크리스마스, 김장하는 날, 그냥 햇빛 좋은 날…. 모이는 데 명절이 따로 있나. 자꾸 봐야 통하는 거야.”
아버지는 교직에 몸담았던 터라 엄격한 편이다. 편안하고 생각이 열려 있어도 아들에겐 우러러보이는 아버지다.
스타일리스트 김윤희 씨는 “아버지 옷은 화사한 봄빛으로 포인트를 줬다”면서 “엄격한 양복 이미지를 벗어나 따뜻하고 한층 젊어 보이는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아들은 원래의 편안한 이미지를 살렸다.
아버지와 아들의 옷은 디자인은 비슷하지만 색깔로 차이를 뒀다. 먼저 어느 연령대에서도 즐길 수 있는 청바지를 맞추고, 셔츠와 카디건 색깔을 달리했다. 아버지는 흰색 셔츠에 화사한 연보라색 카디건, 아들은 줄무늬 셔츠에 짙은 바다색 카디건이다.
아버지는 흰색 면바지에 핑크색 카디건, 아들은 블랙 면바지에 회색 카디건도 입어 봤다. 서로 맞춰 입은 듯하면서 개성이 달라 보인다. 벌써 봄을 맞은 듯한 아버지가 말했다. “다들 훌륭하게 성장해 바랄 게 없다. 지금처럼만 살자.” “아버지, 올해도 저희 모두 사랑해 주실 거죠? 서예도 열심히 하시고, 늘 건강하시기만 하세요.”
○시어머니-며느리…단짝처럼 편하게
하영옥(62) 관장은 “저 전자드럼은 며느리가 혼수로 해온 것”이라고 자랑했다. 며느리 이진경(35) 부관장은 “어머니가 진정 원하는 게 뭘까 고민하다 드럼이 취미라는 말을 듣고 선택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시어머니는 결혼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아들보다 네 살 많은 며느리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딸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경영컨설턴트였던 며느리가 출산 후 갤러리 경영을 도우면서 둘 사이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인간관계도 시간을 투자한 만큼 피드백이 생겨요. 어려웠던 어머님과 붙어 있다 보니 정말 친구 같아지더라고요.”
자주 얘기를 나누다 보니 취미가 비슷했다. 어머니는 드럼, 아들은 키보드, 며느리는 대학 밴드부의 보컬 출신이라 죽이 딱 맞았다. 서로 손을 잡고 동대문과 이태원으로 예쁘고 싼 옷을 사러 다닌다. 둘이 일본으로 자유여행을 떠나 길거리 쇼핑을 하고 맛집까지 섭렵한 적도 있다.
“주말엔 가끔 아들한테 ‘아이 봐라’ 하고 며느리랑 공연 보러 나가요. 내가 나서서 아들에게 시켜야 서로 편하죠.”
# 고부(姑婦) 코디는 이렇게
시어머니는 티셔츠 위에 회색 니트 원피스를 겹쳐 입어 차리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며느리가 입은 회색 니트는 블라우스 소매가 덧대어져 있어 마치 겹쳐 입은 듯한 패션을 보여 준다.
색깔(회색)과 소재(니트)를 맞췄지만 며느리는 바지를 입어 활동성을, 시어머니는 원피스를 입어 여성스러움을 강조했다.
드럼 앞에 나란히 앉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올해 서로에게 바라는 것은 뭘까.
“조국의 미래를 위해 너희 내외를 닮은 아이 하나 더 낳지 않으련?” “어머니, 스트레스는 다 날려버리고 지금처럼 젊고 재미나게 살아요.”
글=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사진=원대연기자 yeon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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