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패션]여자로 산 그녀, 올여름 소년이 되다

  • 입력 2007년 7월 20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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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겹살 회식 자리.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나타난 고은찬(윤은혜)은 익지도 않은 고기를 허겁지겁 먹는다.

옆 동료가 삽겹살 한 조각을 갑자기 바닥에 던지자 은찬이 잽싸게 주워 먹는다.

이때 터져 나온 한 마디.

“정말 은찬적이다(은찬이 답다)”남자 종업원만 뽑는 커피전문점에 취직하기 위해 남자로 살아가는 은찬은 MBC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의 주인공.

웬만한 남자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터프한 면모를 지닌 소녀 가장이다.

사람들이 이 여자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스스한 헤어스타일, 헐렁한 티셔츠, 막 신은 듯한 운동화로 대표되는 ‘남장 여자’ 패션, 이른바 ‘톰보이룩’이 각광 받고 있다.

이효리의 섹시함, 현영의 ‘S라인’ 몸매에서 찾아보기 힘든 털털함이 매력 포인트다.

‘윤은혜 남장 여자 따라잡기’를 하는 여성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동안 열심히 여자로 산 당신, 올여름엔 소년이 돼라!》

○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녀, ‘소년’을 입다

톰보이룩 열풍은 인터넷을 통해 불이 붙었다. 2일 드라마가 시작된 이후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 게시판 및 블로그에는 ‘윤은혜 남장’에 대한 문의가 잇따랐다. ‘TV 속 패션 따라잡기’ 등 인터넷 카페에는 그의 드라마 모습을 담은 사진과 톰보이룩 연출법 관련 게시글이 한 주 만에 100여 건이나 올라왔다.

인터넷 쇼핑몰 ‘G마켓’에서는 5부 워싱 팬츠, 흰 와이셔츠 등 ‘윤은혜 남장 패션’, ‘윤은혜 톰보이룩’ 관련 상품은 모두 주간 평균 100여 개나 판매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체크무늬 와이셔츠, 후드티, 남성용 메탈시계 등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본보가 ‘G마켓’ 이용자 25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68.2%가 톰보이룩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59.7%가 실제 해 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남성들도 여성들의 남장에 대해 65%나 “관심 있다”고 대답했다.

톰보이룩은 2007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부터 각광을 받은 스타일 중 하나였다. 머리를 짧게 자른 여성 모델이 헐렁한 티셔츠에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나거나 오버롤(멜빵바지)을 입고 페도라(중절모)를 쓰는 등 패션쇼 무대를 미소년 같은 여성 모델들이 차지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후지TV 드라마 ‘하나자카리노 기미타치에(아름다운 그대에게)’에서도 남자 교복을 입고 남학생 행세를 하는 여배우 호리키타 마키가 인기를 얻고 있다.

○ 미니멀 섀기컷부터 남성용 팬티까지…

남장의 기본은 바로 헤어스타일. ‘가장 먼저 해 보고 싶은 톰보이룩’ 설문에서 응답자의 52%가 ‘윤은혜 식 컷’이라 불리는 ‘미니멀 섀기컷’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고은찬 스타일을 연출한 아우라 미용실 임철우 원장은 “영화 ‘팩토리걸’의 여배우 시에나 밀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며 “보브컷으로 대표되는 단발머리가 여성스러운 선이 살아 있는 컷인 반면 ‘미니멀 샤기컷’은 꾸미지 않은 소년의 모습을 담은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스타일 연출법은 간단해 바람에 머리를 말려 주기만 하면 된다.

의상 역시 심플함이 기본 콘셉트. 윤은혜의 스타일리스트 지상은 씨는 “박스 티셔츠 등 은찬의 의상 대부분은 95 사이즈의 국내 중저가 남성용 옷”이라고 말했다. 밋밋하다면 후드집업, 후드티 등 ‘후드’류 의상을 걸칠 수 있다. 후드 스타일은 코디 외에도 ‘가슴 가리기’ 효과를 갖고 있는 것이 특징.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볼륨감 있는 가슴은 톰보이룩에선 ‘삭제’ 대상 1호이기 때문이다.

하의는 오버롤, 통 넓은 청바지, 건빵바지와 컨버스 같은 운동화를 매치시키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이는 몸매나 골반 등 여성성 대신 활동성을 우선으로 한 연출법. 은빛의 남성용 메탈시계, 중절모, 체인 등은 톰보이룩을 빛나게 하는 액세서리로 꼽힌다. 여기에 완벽한 톰보이로 거듭나기 위해선 DKNY류의 남성용 언더웨어가 필수다.

○ 대리만족 속 은근한 로리타

과거에 남장은 패션이 아닌 ‘신기한 것’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댄디한 정장과 밀리터리 스타일 등 남성성이 강조된 ‘매니시룩’과 캐주얼 스타일의 ‘톰보이룩’ 등으로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톰보이룩을 즐겨한다는 대학생 장서현(24·여) 씨는 “S라인 몸매로 대표되는 섹시 콘셉트, 44사이즈 등 지나치게 여성성을 강조한 스타일에 도전하는 데 지쳤다”며 “톰보이룩은 부담 없이 개성대로 연출할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이는 ‘대리만족’이란 측면도 지니고 있다. 스타일리스트 최희진 씨는 “학창 시절 보이시한 캐릭터가 여학생들에게 동경의 대상인 것처럼 드라마 속 은찬의 남자다운 말투, 행동 등을 보며 패션을 넘어선 ‘남성화’된 캐릭터에 대리만족을 느끼고 결국 따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패션전문 홍보대행사 프레싱크 오제형 대표는 톰보이룩을 “‘로리타’의 다른 버전”이라며 “완벽한 남장의 재현이 아니라 그 속에 살아 숨쉬는 소녀적 감성을 발견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말했다.

헐렁한 티셔츠나 통 넓은 청바지 등 마치 남자친구의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 바지 밑단을 살짝 접어 발목이 드러나게 하거나 다리 라인을 노출시키는 등 ‘은근한’ 도발성을 드러내는 센스, 그것이 바로 톰보이 속에 살아 숨쉬는 로리타가 아닐까?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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