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서울 동대문 패션상가. 스카프 전문매장이 몰려 있는 골목에 여기저기 똑같은 문구의 푯말이 붙어 있다. ‘려원 스카프.’ 격자무늬가 그려진 정사각형 스카프로 가게마다 빨강 파랑 하양 등 색깔만 10가지가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인디언 판초 스타일 분위기가 나 일명 ‘인디언 스카프’로도 불리는 이 제품은 현재 이곳의 최고 인기 상품 중 하나다. 밀리오레에서 스카프 가게를 운영하는 최정윤(32) 씨는 “하루 평균 30∼40개가 팔릴 정도로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려원 스카프’는 탤런트 정려원이 8월 한 케이블TV 패션 프로그램에서 두른 ‘슈마그’ 스타일의 스카프. 원래는 아랍인들이 모래 바람을 막기 위해 사용한 것이었으나 최근 ‘려원 스카프’라 불리며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G마켓’에서는 ‘려원 스카프’, ‘려원 머플러’로 등록된 제품만 120여 건에 달하며 주간 평균 1만 건의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G마켓 패션그룹 잡화팀 이유영 팀장은 “‘려원 스카프’를 비롯해 중성적인 느낌이 나는 ‘유니섹스’ 스카프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 남성들에게도 인기 아이템 떠올라
가을 패션의 완성인 스카프는 예전에는 여성 패션 소품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성들에게도 인기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특히 올해 유행하는 슈마그 스카프처럼 빈티지 스타일의 체크무늬나 채도가 낮은 컬러 등으로 남녀가 함께 두를 수 있는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이탈리아 스카프 전문 브랜드 ‘빠리에르 사르띠’는 흰색 바탕에 베이지 줄무늬가 들어간 스카프 ‘포토스’, 캐시미어와 실크 소재의 블랙 스카프 ‘파타’ 등 심플한 문양의 스카프들을 올가을 신상품으로 내놓았다. 영국 패션 브랜드 ‘알렉산더 매퀸’도 스카프의 스테디셀러로 통하는 ‘해골 스카프’에 이어 검은색 바탕에 흰 꽃무늬가 들어간 실크 스카프를 시판했다.
신세계백화점 스카프 편집매장의 임미숙 과장은 “스카프를 찾는 남성 고객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남성 고객들의 취향을 고려한 블랙, 그레이 등 무채색 계통의 스카프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스러운 이미지와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함께 삽입해 남녀 공용임을 나타내는 스카프들도 인기다. ‘크리스찬 라크르와’는 남성스러운 분위기의 갈색 스카프에 여성스러운 하트 무늬를 빽빽하게 넣었고 ‘루이까또즈’의 화이트 스카프는 시폰 소재를 사용해 하늘거리면서도 민무늬에 로고가 일정하게 들어가 묵직한 이미지를 주었다.
이 밖에 블랙과 레드를 함께 사용한 ‘모스키노’의 러브 스카프, 무채색의 기하학 무늬 금속 액세서리가 삽입된 ‘시스템’ 실크 스카프 등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얇은 스카프형 머플러 인기 끌듯
중성 스카프 열풍에 대해 스타일리스트 고광화 씨는 “패션에 관심을 보이는 남성이 늘고 있고 매니시한 여성상이 각광을 받는 분위기에서 중성스러운 패션 코디법이 유행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늘하늘하고 컬러풀한 스카프를 하던 여성에겐 미니멀하고 심플한 새로운 트렌드로, 남성에게는 ‘양복+넥타이’ 스타일에서 탈피할 수 있는 새로운 ‘V존’ 패션 소품의 등장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남성 쪽에서 더 두드러진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달간 남성 고객들의 간절기 스카프(스카프형 머플러 포함) 구매가 2만1600여 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0% 증가했다.
직장인 이형택(32) 씨는 “넥타이에 비해 스카프는 매는 방법이 다양해 하나를 가지고 여러 가지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스카프의 인기는 겨울 소품인 머플러 패션도 바꾸고 있다. 과거 캐시미어 소재의 두꺼운 머플러들이 멋보다 보온에 무게를 두었던 반면 최근에는 실크나 면, 니트 소재로 얇게 제작되고 있으며 무늬도 다양해졌다.
스카프형의 머플러를 신상품으로 내놓은 남성 브랜드 ‘엠비오’의 장형태 디자이너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두꺼운 머플러를 찾는 사람들이 감소하는 추세”라며 “앞으로는 얇으면서도 코트나 니트 등에 어울리는 다용도 스카프형 머플러가 겨울 소품으로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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