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기상청이 발표한 올겨울 기상 예보의 핵심은 ‘이상 기후’였다. 지구 온난화와 라니냐의 영향으로 기온 변화가 심하다는 것. 그러나 들쑥날쑥한 날씨도 얼마 가지 않을 것이다. 기상청은 “평균 기온이 예년보다 높아져 2월만 되면 올겨울은 끝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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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아 백화점은 최근 20, 30대 여성층을 대상으로 롱 모피코트 대신 ‘베스트(조끼)’ 모피 상품을 강화했다. 지난해 백화점 내 모피 판매량이 전년도에 비해 4.6% 감소해 올해는 짧고 유행에 민감한 상품들로 강화한 것. 그 효과가 금세 나타나 11월 현재 판매 현황은 예년에 비해 3% 증가했다. 갤러리아 정장팀 하영호 과장은 “이제 모피를 방한용이 아닌 패션 유행 상품으로 여기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죽기 전 밍크코트 한 벌 입어 보는 게 소원”이라는 어머니. 그러나 이런 모피 패션은 시대를 따라 가버렸다. 길게 늘어뜨려 치렁치렁하게 입는 모피의 시대가 가고, 짧고 간편하게 입는 시대가 왔다. 모피인지 아닌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짧아진 세상. 어머니, ‘모피의 굴욕’ 시대가 왔어요!
○ 짧아지거나 잘리거나
긴 밍크코트를 걸치고 우아하게 길을 걷는 사모님들. ‘모피=부(富)’의 공식이 성립되던 예전만 해도 멋져 보였다. 모피코트는 보온 기능은 물론이고 체형 보완 역할도 톡톡히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모피가 ‘싹뚝’ 잘린 듯한, 허리선에서 끝나는 제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모피 재킷의 경우 과거 65cm(목에서부터 잰 길이) 정도가 대부분이었지만 올해는 10cm가량 짧아진 55cm 상품이 대거 등장했다. ‘볼레로’(단추가 없는 짧은 재킷)의 경우는 25∼30cm 수준으로 말 그대로 ‘걸치는’ 수준이다. 국내 모피 브랜드 ‘진도모피’의 경우 반코트와 롱코트 생산을 각각 전체의 10%, 2%로 줄인 대신 짧은 재킷 생산량은 전체의 81%로 늘렸다.
특히 올해는 베스트가 모피업계 히트 상품으로 꼽히고 있다. 모피 브랜드 ‘퓨어리’는 올해 롱코트를 아예 생산하지 않고 베스트 판매에만 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 베스트 판매량이 지난해에는 전체의 5%에 불과했으나 올해는 30%로 늘어났다. ‘퓨어리’의 이유형 실장은 “‘레이어드(겹쳐입기)’ 룩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겹겹이 입은 옷을 보이게 하고 싶어 베스트를 선호한다”며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긴 코트는 촌스럽다는 인식이 많다”고 말했다.
짧아진 건 몸통 길이만이 아니다. 재킷의 소매는 손등을 다 덮지 않고 7분이나 5분 길이로 짧아졌고 모피 장갑은 손가락 부분이 잘린 형태가 유행하고 있다. 목과 귀 밑 부분을 다 덮던 목깃이 사라지고 라운드 형태로 파인 제품도 나왔다.
길이가 짧아진 만큼 옷 라인도 전체적으로 간결해졌다. 진도모피 디자인팀 서동민 실장은 “과거 롱 모피코트는 밑단이 말린 형태의 ‘A형’ 라인으로 우아함을 나타냈다면 최근에는 몸매가 드러날 정도로 슬림한 스타일이나 볼륨감을 준 튤립 모양의 ‘코쿤 실루엣’ 형태 등 여성적인 느낌을 강조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 모피도 변해야 할 때
모피 의류의 길이가 짧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피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를 첫 번째 이유로 꼽았다. 갈수록 겨울이 짧아지고 실내 난방 상태가 좋아짐에 따라 과거의 긴 모피코트가 더는 필요 없게 된 것. 이는 모피 제품 전체 판매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신세계 백화점 여성정장팀의 홍성은 과장은 “2005년 이후 모피 판매량이 계속 줄어 지난해에는 4% 감소, 현재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7%나 감소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각 백화점은 수시로 가격 할인 판매전을 실시하거나 머플러, 숄 등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모피 액세서리를 강화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모피업체들은 갈수록 유행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올해는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무채색이나 단색 위주의 모피 제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퓨어리’는 ‘퓨처리즘(미래주의)’을 반영해 금속성 느낌이 나는 금색 밍크와 은색 밍크를 내놓는 등 20, 30대 젊은층을 공략하는 상품들에 힘을 쏟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퓨전 모피’ 형태로 이어진다. 모피 브랜드 ‘엘페’는 ‘스포티즘’을 주제로 한 ‘점퍼+밍크’ 형태의 상품을 내놨다. 지퍼가 달린 밍크 재킷이나 모자가 달린 모피 재킷이 대표적이다.
윗부분은 모직과 캐시미어로, 아랫부분은 모피로 꾸며진 베스트나 가죽재킷에 모피를 군데군데 붙여놓은 재킷, 니트에 밍크를 심어놓은 ‘밍크 니트’ 등도 인기를 얻고 있다. 과거 100% 모피가 아니면 털이 빠진 듯해 고급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엘페’ 디자인팀의 우경아 실장은 “롱 모피코트 같은 고가 제품은 40, 50대 VIP 고객들을 위해 소량으로 한정 주문 생산하고 재킷이나 베스트 등은 최신 유행을 반영해 낮은 가격에 내놓는 등 마케팅을 다변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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