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을 내밀어 인사하는 동안 그의 오른손은 주머니 깊숙이 있었다. “왜 한 손을…”이라고 말하자 웃으면서 “안 그래도 건방지다고 오해받아요. 오른팔이 없거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복 디자이너 이나경(54) 씨는 오늘도 그렇게 한 손으로 살아간다. 그렇게 한복을 만든 지도 어느덧 30년째.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아유, 한시도 쉰 적이 없어요. 지금도 29일부터 하는 연극 ‘단군본풀이’에 쓰일 한복 의상을 제가 맡았어요. 7년 전 세상을 떠난 극작가인 내 친구 엄인희 작품인데 내가 의상도 맡았고 내 둘째 딸도 출연해 의미가 남다르죠.”
1978년 이화여대 서양화과 재학 중 극작가 오태석의 연극 ‘태’로 데뷔한 그는 한지로 만든 한복 의상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이후 이문열 원작의 연극 ‘선택’, 오페라 ‘아 고구려’ 등 그는 연극, 무용, 오페라 등 무대 예술에서 자신의 한복을 배우들에게 입혀 왔다.
30년간 100여 편이나 되는 작품 의상을 만들었다.
중학교 입학 전의 일이다. 설날 방앗간을 갔다 기계에 팔이 들어갔고 그 이후 그는 영영 오른팔을 보지 못했다. 그림은 물론이고 생활 모두를 왼손에 의지해 살아야 했다. 절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절망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마음’ 때문이었다.
“한복을 만드는 건 마음이라 생각해요. 손은 도구일 뿐이죠. 때로는 바느질하려고 발가락에 바늘을 꼽고 왼손으로 실을 끼우기도 하지만 할 수 있다는 마음만 있으면 돼요. 내가 만든 한복이 100년 후 박물관에 걸릴 옷이라는 생각을 갖고 만들죠.”
30년 세월이 가져다준 것은 한복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는 “서양 옷이 형태가 있는 ‘가방’ 같은 것이라면 우리 한복은 형태가 없는 ‘보자기’”라며 “누가 입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전북 지역의 한 폐교(廢校)에 염색과 한복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한복 아카데미를 짓고 있다.
“이제 남은 건 후배뿐”이라며 흔드는 이 씨의 왼손을 보니 뭉툭하기 짝이 없었다. 때도 한 움큼 끼어 있었다.
“늘 이래요. 오른손이 하는 일까지 왼손이 30년간 해 왔으니까요. 하하.”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