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에 새로 생긴 멀티숍 ‘10 꼬르소꼬모’에 전시되고 있는 천재 디자이너 마담 그레의 드레스 앞에서다.
빈티지라고 하면 남이 입던 옷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 어머니조차 빈티지 컬렉션을 즐겨 입는 나에게 ‘누가 입었던 것인지도 모르는 헌 옷 좀 내다 버리지’라며 핀잔을 준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재현할 수 없는 색감과 그 당시의 기품이 서려 있는 빈티지 컬렉션은 외국에서는 마치 미술품이나 주식과 같이 시간이 흐를수록 값이 올라가는 상품이다. 모든 빈티지 컬렉션이 똑같이 고가(高價)는 아니지만 마담 그레처럼 희소성 있는 작품은 가치가 쑥쑥 올라간다.
100년 이상 된 앤티크와는 달리 빈티지 컬렉션은 100년이 안 된 제품을 말한다. 이 중에서도 유명 인사나 배우가 입었다거나 혹은 디자이너들이 발표하면서 유명해진 옷은 가격이 높아진다. 오드리 햅번이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입었던 드레스는 지난해 1억 원이 훨씬 넘는 가격에 팔렸다.
패션 디자이너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하지만 과거의 룩(Look)이나 스타일(Style)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마담 그레나 크리스찬 디오르, 이브 생 로랑, 피에르 가르뎅 의상들은 많은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에 마크 제이콥스나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같은 유명 디자이너들은 컬렉션을 끝내고 나면 언제나 빈티지 숍으로 간다.
몇 해 전 인터뷰한 크리스찬 라크르와도 가장 영감이 떠오르는 곳은 바로 빈티지 제품이 많은 벼룩시장이라고 했다. 벼룩시장에선 가격이 싼 것이 많지만 디디에 뤼도같이 전문적인 빈티지 컬렉터가 운영하는 곳은 웬만한 디자이너의 컬렉션보다도 가격이 비싸다.
빈티지 컬렉터는 패션 디자이너와는 달리 시대적 배경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아야 한다. 또 진품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예리함이 있어야 한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을 찾아 전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끈기와 노력도 필요하다.
시상식장의 레드카펫 문화가 일천한 국내에서 배우들은 새로운 명품만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는 희귀한 빈티지 컬렉션을 입는 사람이 최고의 찬사를 받기도 한다.
니콜 키드먼이나 리즈 위더스푼, 제니퍼 로페즈 등은 발렌티노나 샤넬 쿠튀르 등의 빈티지 컬렉션을 입음으로써 패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빈티지 컬렉션에는 깊은 내공이 있다. 화려하다기 보다는 1920년대의 아르누보 시대나 1930년대의 재즈 시대, 혹은 오드리 햅번이 살아 있던 그 시대에서 만들어진 색상과 실루엣, 소재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매력은 어떤 디자이너도 만들어 낼 수 없는 천일야화(千一夜話)와 같은 아름다움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서은영 패션 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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