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마주한 탁자에 침이 얼마나 튀었는지 모르겠다. 간단한 질문 하나에도 말을 늘어놓는 그는 누가 봐도 ‘정열’의 피를 숨기지 못하는 이탈리아 남자였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에 애정을 갖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디자이너라는 사실이다.
“한국 여성들, 세련된 건 알아주죠. 25년 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만 해도 그냥 몸을 가리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유행을 제대로 소화하는 것 같아요. 특히 옷 색깔이 많이 다양해지고 과감해진 것 같은데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끼’ 아닐까요?”
그가 한국 여성 편을 드는 건 이유가 있다. 그가 만든 가방이 아시아, 특히 한국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일명 ‘올챙이’ 가방으로 통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에트로’는 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전통 문양을 재해석한 ‘페이즐리’ 스타일로 기억되는 브랜드 중 하나다. 이 같은 인기 덕분에 지난달 말 에트로를 수입하는 국내 유통회사가 이탈리아 조르조 나폴리타노 대통령이 주는 ‘코멘다토레’ 문화훈장까지 받을 수 있었다. 올해는 에트로가 패션사업을 시작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에트로의 액세서리 수석 디자이너이자 에트로가(家)의 장남 야코보 에트로(46) 씨는 최근 40주년 기념 가방을 공개하기도 했다.
“아버지(창업자 짐모 에트로 씨) 때부터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에트로 DNA’, 즉 정체성이죠.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고유의 페이즐리 문양을 지켜왔기에 한국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고요. 지금도 인도, 중국, 파키스탄 등 아시아 중동 지역을 여행하며 고유 문양을 익히고 있죠.”
에트로는 1960년대 발렌티노, 조르조 아르마니 등에 캐시미어 원단을 제공하던 원단사업가 짐모 에트로 씨가 1968년 설립한 브랜드다. 40년 동안 인도의 전통 감성을 이탈리아 스타일과 접목시켜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는 1993년 처음 소개됐으며 14곳의 면세점과 21개 백화점에 매장이 들어섰다. 현재는 남성복과 여성복, ‘참살이’ 열풍에 힘입어 커튼, 침구, 쿠션 등 가정용품까지 사업을 확장했다.
에트로가는 장남 야코보 씨를 포함해 모두 3남 1녀. 역사 깊은 여느 브랜드처럼 ‘가족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가족경영 얘기를 꺼내자마자 “우리 모두 싸움꾼(빅 파이터)”이라는 그에게 싸운 후 어떻게 푸는지 묻자 “휴가내서 한 달간 (형제들) 얼굴 안 보면 저절로 풀린다”며 웃었다.
향후 목표를 묻자 한국의 수입남성복 시장에 본격 뛰어들겠다고 했다. 그는 지겹고 보수적인 감색 양복에 길들여진 한국 남성에 대해 “아빠 옷 같은 스타일을 확 바꾸겠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셔츠 단추 두 개를 풀었다. 목 위로 가슴 털이 수북한 그의 모습이 전형적인 남부 유럽 비즈니스맨 스타일이라지만 “좀 야한 것 같다”고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Always let your mind free!(항상 마음을 자유롭게 하라!)”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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