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만한 이 다 안다…트렌드 미다스 ‘아르마니’

  • 입력 2008년 5월 29일 08시 15분


기자가 우연히 Mr. 아르마니-진짜-와 마주친 것은 2006년 초, 밀라노 몬테나폴레오네 거리에 있는 그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아르마니 진 등으로 확장된 다양한 의류 브랜드들에서부터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꽃집, 서점, 화장품 코너, 카페, 심지어 초콜릿 매장까지 브랜드화된 ‘아르마니 세계’가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다리가 아플 정도로 실컷 구경한 뒤 동행한 동료들과 같은 빌딩 안의 라운지 바에 들렀다.

그리고 그 곳에서아르마니와 마주쳤다. 운동으로 다져진 듯한 다부진 몸매, ‘젯셋족(비행기와 크루즈로 여유 있게 여행 다니는 사람)’임을 온몸으로 증명하는 구릿빛 피부와 백발, 시니컬한 표정이 강한 ‘아우라’를 내뿜었다. 함께 있던 동료 가운데 패션스쿨 재학 시절, 아르마니 백스테이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는 친구가 먼저 말을 걸어보겠노라고 했다. 그가 이탈리아어로 조심스레 인사를 건넨 뒤 일행 모두가 나서서 한마디씩 인사를 나눴다.

꼿꼿한 자세, 특유의 강렬한 눈빛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눈인사를 건넨 뒤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고 일행은 “불로초라도 먹는 게 틀림없다”며 입을 모았다. 74세인 현재까지도 시크한 모습으로 아르마니사를 진두지휘하는 그에게는 분명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 작은 실수도 용납 않는 완벽주의자

그의 ‘특별한 무엇’을 파헤치는 것은 많은 패션 기자들의 오랜 관심사다. 사생활 공개를 극히 꺼리는 데다 영어가 약한 그의 모든 것을 밝히는 데는 역시 이탈리아 기자들이 유리했다.

1991년부터 이탈리아 일간지 ‘일 솔레 24 오레’에서 패션 비평을 써오고 있으며 ‘보그’ ‘카사 보그’ ‘GQ’ 등의 잡지에서 일했던 이탈리아 패션 기자 레나타 몰로가 나섰다. 최근 번역된 한국어판 제목은 ‘라이프스타일의 창조자, 아르마니 패션 제국’(문학수첩)이다. 영문판 제목은 ‘Being Armani’. 의역하자면 ‘아르마니로 산다는 것’쯤이 되겠다.

아르마니는 이전부터 자서전을 쓰라는 제안을 수없이 받았다. 그때마다 그는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를 열어 보인다는 의미다. 나는 그럴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몰로 기자는 책의 머리말을 통해 아르마니의 가족, 스태프, 오랜 친구 등을 인터뷰해 전기를 완성했다고 밝혔다.

1934년 무솔리니의 독재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 이탈리아 피아첸차에서 태어난 아르마니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고스란히 겪으며 성장했다.

유년 시절을 고향에서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밀라노로 이주한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부드러운 발음 덕에 프랑스어를 잘했지만 수학 과학 과목은 낙제점을 받기도 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당시 주위의 여자친구들에게 옷 입는 법과 헤어 스타일링에 대해 조언할 정도로 감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현재까지 이어져 주위 사람들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독보적인 디자인으로 정상에 오르다

의대에 진학했으나 적성이 맞지 않았던 데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업을 포기했던 그가 패션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밀라노의 리나센테 백화점에서 의류 구매와 매장 디스플레이를 맡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자신의 이름을 딴 패션 컬렉션을 선보인 지 7년 만인 1982년, 크리스찬 디올에 이어 패션 디자이너로서는 두 번째로 시사지 ‘타임’의 커버 인물로 등장했다.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른 성공의 배경에는 물론 디자인이 있었다. 독보적인 테일러링의 수트, 베이지색과 그레이가 섞인 ‘그레이지’ 컬러 등은 독창적인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이루는 데 큰 힘이 됐다. 파격적인 홍보 방식 역시 큰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1989년 오스카상 시상식 때 미셸 파이퍼에게 협찬했던 의상이 언론의 극찬을 받으면서 할리우드 스타들에 각광받는 디자이너로 우뚝 선 것이다.

지금은 흔한 홍보 전략이지만 당시로선 개척자적인 행보였다.

아르마니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르마니 그룹은 전 세계 46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300여 개에 달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 도쿄 긴자에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라운지 바까지 갖춘 12층짜리 토털 라이프스타일 부티크를 선보였고, 곧 두바이와 밀라노에 아르마니 호텔&리조트가 완공된다. 지난 달 발표한 2007년 아르마니사의 EBITDA(이자, 세금, 감가상각 전 영업이익)은 3억5500만 유로로 2006년에 비해 18성장했다.

그러나 ‘아르마니 디자인’의 자동차(벤츠), TV와 휴대전화(삼성전자)에 이르기까지 라이프스타일 영역과 관련된 분야에서 손대지 않은 것이 없는 그에게 쏠린 세간의 관심은, 아이러니하게도 ‘포스트(Post) 아르마니’와 연관된 것이다. 디자인, 경영, 인사 등 그에게 집중된 이 회사의 권력 구조와 디자인 아이덴티티가 어떻게 지켜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아르마니의 개인 옷장은 문짝이 48개나 되고 그에게는 LVMH나 PPR같은 거대 패션 그룹들의 인수 노력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킬 만한 자금이 있다. 그만큼 그는 부자다. 그럼에도 그의 고민 가운데 가장 큰 부분 역시 부와 관련된 것이란 점에서 묘한 여운이 남는다.

“앞으로 오직 돈이 많다는 이유로 내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에 둘러싸인 늙은 부자가 돼 있지 않을까? 나는 그것이 늘 두렵다.”

THE WEEKEND 김현진 기자 khj@donga.com

자료제공=문학수첩

[화보]‘명품’ 아르마니 구찌 프라다 패션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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