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 안 된다면 스포츠웨어가 어울리는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봐도 심각해 보이기만 하던 내게 쿨한 NBA 반바지, 광택이 번쩍거리는 야구 점퍼는 다른 차원의 옷차림일 뿐 내 옷이 되어 주지 않았다. 평생 한여름에도 빳빳한 셔츠만 입고 살아야 하나 하고 포기하고 있을 무렵 나를 구원해 준 것은 바로 잡지에서 본 폴로의 셔츠-지금은 피케 셔츠로 더 잘 알려진- 광고였다.
방금 전까지 거칠게 뛰어 다닌 듯 헝클어진 머리, 이마에 반짝이는 땀방울, 그러면서도 우아함을 읽지 않은 표정은 깃을 세운 새하얀 티셔츠와 완벽하게 어울려 나도 저걸 입으면 저렇게 그윽한 매력을 가진 ‘스포츠형’ 남자가 되겠구나 하고 착각하게 만들었다.
그 때의 그 셔츠가 테니스 셔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후로 한참 뒤였다. 상상으로도 잘 그려지지 않지만 흰 셔츠에 타이까지 매고 테니스를 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신사들의 스포츠라 불리던 테니스를 하기에는 어쩌면 가장 우아한 차림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스포티’라고 해봐야 소매를 걷는 것에 그친 정도의 시절에 활동성과 간편함이란 먼 얘기였을 듯 하다. 그런 신사들에게 악어란 별명의 테니스 선수 라코스테가 1927년 개발한 이 간편한 티셔츠는 굉장한 혁신이었을 것이다.
땀에 달라붙지 않고 바람이 잘 통하는 원단, 활동성을 높인 소매의 밴드와 간편한 단추 여밈, 펄럭이지 않지만 햇볕 아래에서는 세워서 목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부드러운 깃, 테니스를 치면서 움직여도 바지에서 빠져 나오지 않도록 고안한 ‘테니스 테일(셔츠의 뒷단을 더 길게 만든 것)’, 그리고 스포츠 코트(재킷)와 잘 어울리면서 신사의 단정한 매력을 표현해 주는 화이트 컬러까지. 이런 당시의 혁신적 요소들은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고, 입는 사람에게 적당한 스포티함과 동시에 우아함을 선사한다.
‘심각 소년’이었던 나에게도 청바지와 함께 멋지게 어울렸으니 말이다.
폴로 셔츠가 예전에는 격식을 갖춘 옷 대신 좀더 편리하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기능했다면 현대에는 티셔츠를 입기 보다는 조금 더 격식을 차릴 수 있는 옷으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철 코튼이나 린넨 수트와 함께 입고 싶다면 깃과 몸통이 같은 원단으로 만들어지고 심지가 들어가 깃이 살아 있는 제품을 고르면 된다. 물론 헐렁하지 않아야 맵시가 생긴다.
좀더 스포티하게 연출하고 싶다면 소매 길이가 약간 짧은 듯 하고 밴드가 있는 셔츠로 고르면 남성미를 강조할 수 있다. 대신 길이가 너무 짧아 허리가 드러나지는 않도록 해야 한다.
한 승 호
아버지께 남자를 배우고 아들에게 그런 아버지가 되고 싶은 수트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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