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패션브랜드 ‘자르댕 드 슈에트(Jardin de chouette·프랑스어로 올빼미의 정원)’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이 브랜드를 이끄는 프랑스 유학파 패션디자이너 김재현(40) 씨. 173cm의 큰 키 때문이었는지, 헐렁한 검은색 저지 티셔츠와 검은색 진바지 차림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눈매를 검은색 아이섀도로 강조한 메이크업 때문이었는지 그녀에게선 짙은 에스프레소 커피 향이 나는 듯했다. 이때 스타일리스트이자 패션 홍보대행사 프레싱크의 대표인 오제형(35) 씨가 “재현 누나, 안녕”이라며 경쾌하게 들어섰다.
절친한 이들은 ‘프렌치 스타일’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만났다. 영국 여가수 제인 버킨의 딸인 배우 샬럿 갱스부르의 자연스러운 멋, 인생 경로마저 화려한 프랑스 대통령 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세련된 퍼스트레이디룩으로 요즘 세계 패션계는 ‘프렌치 시크(French chic·프랑스인의 몸에 밴 패션감각)’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지 않은가.
이화여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 ‘에스모드 파리’에서 패션을 전공하고 7년 동안 파리에서 살았던 김 씨, 서강대 불어불문학과 재학 시절부터 방송 일을 하다 이젠 여러 해외 브랜드 홍보를 맡는 사업체 대표가 된 오 씨는 진정한 프렌치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대화를 시작했다. 이들이 말하는 프렌치 스타일은 지극히 주관적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프랑스와 인연을 맺거나 맺었던 다른 사람들의 의견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프렌치 스타일의 다양한 얼굴
―프렌치 스타일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김재현(이하 김)=“클래식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는 것 아닐까요. 프랑스 여자들은 브랜드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감성으로 옷 매치를 잘하거든요. 검은색을 끔찍이 좋아하지만 여기에 짙은 감색과 갈색을 세련되게 매치하는 법도 본능적으로 잘 알죠. 가죽 팔찌나 코르사주 같은 개성 있는 액세서리도 잘 활용하고요.”
오제형(이하 오)=“프랑스 여자들은 다소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던데…. 새 옷 같지 않은 옷을 여러 개 겹쳐 입고 머리는 헝클어진 듯 풀어헤치고 피부 잡티나 주름도 메이크업으로 감추려 하지 않고. 그런데 왠지 모를 편안한 느낌, 그게 바로 프렌치 스타일 아닐까요. 반면 프랑스 남자들은 좀 더 장식적이죠. 화려한 스카프나 중절모를 즐기니까요.”
프랑스에 살았던 사람들은 프렌치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여성스러움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자유분방함’, ‘보수적이면서도 즉흥적인 이중적 매력’을 꼽는다. 커리어우먼들은 딱 떨어지는 정장보다 카디건과 치마 차림의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즐기는데 샤넬처럼 명품 핸드백을 들고 직장에 출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훌라’ 등 합리적인 가격대의 브랜드를 평소 애용한다고 한다.
김=“전 날씬한 프랑스 여자들이 약간 무심한 듯 허리를 동여맨 트렌치코트를 입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거기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차려입겠다는 강박 관념이 없거든요. 너무 꾸민 것 같은 차림새를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트렌치코트는 프렌치스타일을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이죠.”
오=“해진 티셔츠, 색 바랜 청바지 등 낡은 아이템을 자연스럽게 포용하는 놀라운 힘이 트렌치코트엔 있어요. 요즘엔 트렌치코트의 전통적 소재인 면뿐 아니라 실크 등 드레시한 옷감도 많아요. 비니(머리에 달라붙는 모자)나 중절모와 함께 매치하면 멋스럽죠.”
―프렌치 스타일을 위해 옷장 속에 구비할 아이템을 추천해 주세요.
오=“블레이저(해군 스타일 재킷), 피케 셔츠(칼라가 달린 스포츠 상의), 스카프.”
김=“트렌치코트, 청바지, 흰색 셔츠.”
○프랑스 여자의 감각 세포는 살아 있다
여성의 둥근 보디 실루엣을 살린 실크 블라우스, 가슴에 올빼미를 그린 줄무늬 니트, 허리선을 올린 와이드 팬츠…. 김 씨는 프렌치 스타일을 그만의 방식으로 풀어내 옷을 만든다.
―프랑스 여자들은 왜 살찌지 않을까요?
김=“파리지엔들은 플랫 슈즈나 굽 낮은 단화를 신고 많이 걷죠. 예쁜 상점과 카페가 많은 파리는 참으로 걷기 좋은 도시예요.”
오=“프랑스 여자의 감각 세포가 발달돼 있어서가 아닐까요. 음식을 조금씩 음미하면서 즐기니까요. 그들이 즐기는 시금치 퓌레와 구운 아스파라거스는 음식을 만드는 기쁨도 덩달아 선사하는 요리들이죠.
미레유 길리아노의 ‘프랑스 여자는 살찌지 않는다’란 책에선 ‘프랑스 여자는 배가 터지도록 음식을 먹지 않고 머리로 식사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 애덤 고프닉의 책 ‘파리에서 달까지’는 격렬한 미국식 헬스클럽과 생제르맹 거리를 윈도 쇼핑 하듯 천천히 운동하는 프랑스식 헬스클럽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비교하기도 했다.
김=“파리지엔들은 옷이든 음식이든 오래 즐길 수 있는 안목을 어려서부터 배워요. 자기 스타일에 대한 확신, 나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해변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시집을 읽을 수 있는 여유가 프렌치 스타일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진작부터 물어보려 했어요. 재현 씨는 왜 ‘올빼미의 정원’이라고 브랜드 이름을 지었나요.
김=“유럽에선 올빼미가 길조(吉鳥)라 정원에 날아들면 반긴대요.(웃음) 무엇보다 프랑스어엔 ‘세 슈에트(C’est chouette)’란 감탄어구가 있어요. ‘참으로 멋지다’란 뜻이죠.”
오=“프랑스 사람들이 밥 먹듯 즐겨 쓰는 말이죠. ‘세 슈에트!’ 그러고 보니 이 말이야말로 생활 속에서 멋을 추구하는 프렌치 스타일이네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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