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지만 모피 앞에서 여심(女心)은 흔들린다. 올해 파리, 밀라노 등 유럽에 비해 전통적으로 모피를 즐겨 사용하지 않던 런던과 뉴욕의 패션 컬렉션에서도 모피는 무대 곳곳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세계적인 컬렉션에서 새로운 모피 작품을 선보인 패션 브랜드들의 주요 타깃은 풍부한 천연자원을 바탕으로 한 경제성장과 추운 날씨 때문에 모피 수요가 부쩍 늘어난 러시아의 돈 많은 부자들이다.
친칠라(다람쥐과), 세이블(담비), 링스(시라소니) 등 밍크보다 10배 이상 비싼 고가(高價) 모피 제품이 많아진 이유다.
패션계의 복고 흐름을 타고 올해 모피 코트는 1960년대 스타일이 많아졌다. H라인과 코쿤(cocoon·큰 알 모양으로 볼륨감을 살린) 실루엣도 눈에 많이 띈다.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밍크코트는 칼라 없이 목 부분을 둥글게 처리한 라운드스타일, 통이 넓은 일본 기모노스타일 소매, 밍크의 주름장식 등으로 최근의 트렌드를 집약해 보여준다.
‘마르니’는 엉덩이를 덮는 길이의 모피 조끼 위에 벨트로 허리를 강조한 스타일(사진)을 선보였다. 여우, 너구리, 염소, 타조 등 동물농장을 연상시키는 다채로운 동물들의 털을 거칠게 표현한 게 특징. 조끼는 보온성이 높으면서도 활동하기 편한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러시아처럼 맹추위가 없는 한국에선 불황기에 맞춘 패션 센스가 필요하다. 육중한 부피의 낡은 모피코트를 갖고 있다면 올겨울 ‘에밀리오 푸치’처럼 초록색과 보라색으로 강렬하게 염색하는 것도 ‘화끈한’ 패션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옛 밍크코트를 해체해 조끼를 만들고, 남은 털을 치마 밑단이나 소매 끝에 붙이면 트렌드의 선봉에 설 수 있다.
모피 전문 브랜드 ‘퓨어리’엔 꼬불꼬불한 양털(몽골리안 램)을 분홍색으로 염색한 긴 모피 조끼가 있다. 옛날 할머니들이 입던 양털이 최첨단 유행으로 부활했다. 트렌드 세터인 모델 변정수 씨가 이미 이 조끼를 사갔다고 한다.
이유형 퓨어리 실장은 “청바지에는 검정색 줄이 들어간 베이지색 여우털 조끼, 레깅스에는 코쿤 스타일의 하늘색 밍크 재킷을 권한다”고 말했다.
올겨울 인간의 패션을 위해 몇몇 파충류도 희생됐다. ‘토즈’의 비단뱀 가죽 하이힐, ‘주디스 리버’의 악어 클러치백 등 동물 가죽 특유의 질감을 살린 제품들이 많이 나왔다.
확실하게 튀는 모피와 파충류 패션에선 핸드백과 구두의 코디가 중요하다.
조승현 신세계백화점 과장은 “심플한 소가죽 부티(발목 부츠)에는 악어가죽 클러치백, 스웨이드 롱부츠에는 밍크털 장식의 핸드백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
최근 프랑스 브랜드 ‘지방시’를 눈부시게 부활시킨 디자이너 리카르도 티스치는 밍크를 즐겨 사용한다. 그는 동물 보호론자들의 비난에 대해 이렇게 명쾌하게 답한다.
“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는 게 좋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고객의 요구에 응할 뿐이다. 그런데 내 고객 중에는 모피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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