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놀라운 패션도시

인구 47만에 패션숍 7000여개…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매력

지난해 말 세계적인 여행가이드 회사 ‘론리플래닛’은 ‘2009년 가 볼 만한 세계 10대 도시’를 선정해 발표했다. 이 명단에서 상하이, 시카고, 멕시코시티 등 세계적 관광지와 이름을 나란히 한 도시 중 하나는 ‘안트베르펜(영어명 앤트워프)’.

1920년 이곳에서 올림픽이 열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생소하기만 한 벨기에의 이 도시를 론리플래닛은 다음과 같이 칭찬했다.

‘스타일리시한 도시다’ ‘디자인의 천국이다’ ‘서유럽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도시다’….

파리 런던 로마 등 유럽의 간판 도시들을 제치고 혜성처럼 떠오른 이 도시에는 대체 어떤 매력이 숨겨져 있는 걸까.

● 패션도시의 샛별, 안트베르펜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차로 1시간 반가량 떨어진 안트베르펜은 최근 유럽의 젊은 층 사이에서 가장 ‘핫(Hot)’한 쇼핑도시로 각광받고 있는 지역이다.

그중에서도 안트베르펜이 핵심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는 ‘패션’.

“안트베르펜에서는 시내 2km 반경 안에서 거의 모든 패션 브랜드를 다 볼 수 있어요. 명품 매장이 늘어선 거리를 걷다가도 한 골목만 돌아서면 H&M, 자라 같은 캐주얼 매장들이 나오죠. 거기서 또 조금 더 걸어가면 개성 강한 아이템들로 가득한 디자이너 숍이나 멀티 레이블 매장(편집매장)들을 만날 수 있고요. 빈티지 숍, 아웃렛, 100여 년 동안 운영돼 온 소품 공방도 있죠.”(주민 데비 반미르비크 씨)

벽돌이 깔린 마차 길과 17, 18세기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이어지는 안트베르펜의 거리 골목에서는 실제 다양한 장르와 가격대의 거의 모든 패션을 경험할 수 있었다.

샤넬, 루이비통, 돌체 앤드 가바나 등 명품 브랜드의 최신 아이템은 감각적인 디스플레이를 자랑하는 편집매장에서 한눈에 쉽게 둘러볼 수 있다. 이 지역 패션 매장의 상당수는 돔 천장을 자랑하는 웅장한 유럽식 건물 안에 들어서 있어, 뉴욕이나 도쿄의 현대적인 매장과는 또 다른 매력이 느껴진다. 드리스 판 노턴, 마르탱 마르지엘라, 안 데묄미스터르 등 아방가르드 패션을 대표하는 벨기에 디자이너들의 숍도 바로 이곳에 있다.

안트베르펜에서 패션관광 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필립 릭 씨는 “안트베르펜의 인구수는 47만 명에 불과하지만, 각종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매장(대형 대표 매장)을 비롯해 크고 작은 패션숍은 7000여 개나 된다”고 설명했다.

● 정부-학교-디자이너의 ‘3박자’ 하모니

안트베르펜이 유럽의 ‘패션 천국’으로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다. 이는 안트베르펜이 속해있는 플랑드르 지방정부가 1980년대부터 꾸준히 추진해 온 패션산업 육성 프로젝트에 따라 실현됐다.

● ‘놀라운 패션도시’ 벨기에 안트베르펜

항구도시인 안트베르펜(영어명 앤트워프)은 본래 수백 년 전부터 물류와 다이아몬드 거래로 유명했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1950년을 전후로 물류 산업만으론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졌어요. 강력한 전통산업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산업 분야를 발굴해야 했죠. 그때 주목한 것이 패션 산업입니다.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밀라노 등 주변 도시들은 이미 패션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지요.” (안트베르펜 관광청 아니크 보가르트 디렉터)

지방정부와 안트베르펜 시는 ‘텍스타일 플랜’이라는 패션산업 육성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신진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창조적인 디자이너를 지원하기 위한 패션대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Fashion, this is Belgian(패션, 이것이 벨기에의 정신)’이란 슬로건을 앞세워 국내외 홍보활동에도 나섰다.

이러한 정부 지원 아래 지역 내 왕립예술학교 졸업생들이 해외에서 선전하기 시작했다. 이는 안트베르펜의 패션 도시 이미지를 더욱 뚜렷하게 만들었다.

당시 이 학교 패션학부 졸업생 6명으로 구성된 ‘안트베르펜 식스’라는 디자이너 그룹은 영국 런던에서 열린 패션쇼에 참가해 호평을 받았다. 이들이 현재 세계 패션계에서 아방가르드 패션을 이끄는 드리스 판 노턴, 안데묄미스터르, 디르크 비켐베르크스, 발터 판 바이렌동크, 디르크 판 사에너, 마리나 이 등이다.

“안트베르펜을 이름에 넣어 그룹을 결성한 것은 우리를 알리는 데 아주 효과적이었어요. 발음조차 어려운 우리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려면 아마도 몇 배나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웃음).” (안트베르펜 식스 멤버 디르크 판 사에너)

●패션이 도시의 미래다

이제 글로벌 패션업계에서는 ‘안트베르펜 패션’이라는 말이 아방가르드 패션을 대표하는 고유명사처럼 통용된다.

이 지역에서는 안트베르펜 식스 이후에도 라프 시몬스, 베로니크 브랑키노, 팀 판 스테인베르헌 등 신진 유명 디자이너들이 계속해서 배출되고 있다.

플랜더스 패션협회의 에디트 베르블리에 총괄 실장은 “지방정부의 수상이 직접 왕립예술학교 패션학부의 후원 행사에 참여할 정도로 이곳에서 패션의 가치는 높다”며 “유명 디자이너의 매장이 계속 들어서면서 지역의 구석구석도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안트베르펜의 도심은 디자이너들 덕분에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었다.

未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