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열린 2009 봄여름 밀라노 컬렉션에서 프라다는 뱀피 가죽과 레이스를 화려하게 접목한 킬힐을 선보여 전 세계 패션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옷에나 달던 레이스를 구두에 과감히 적용한 프라다의 킬힐은 여성스러움을 극대화해 거친 느낌의 다른 럭셔리 브랜드의 그것과는 그 차이가 두드러졌다. 아직 국내에서는 살바토레 페라가모나 구찌처럼 ‘프라다 슈어홀릭’은 많지 않지만 절제의 미(美)로 대변되는 프라다 가방에서는 느낄 수 없는 프라다 구두만의 맥시멀리즘(Maximalism·과대 패션)’을 흠모하는 여성들이 점차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밀라노 컬렉션 취재차 찾은 이탈리아에서 국내 언론 처음으로 프라다 구두 공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국내 언론뿐 아니라 현지 언론에도 좀처럼 공개되지 않는 곳이었다. 프라다 제품은 모두 이탈리아 현지에서 제작된다. 이탈리아에서도 중부지방인 아치오에 프라다 구두를 비롯해 가방, 의류 공장 3곳이 모여 있다. 아치오는 1년 내내 맑고 온화한 기후 때문에 살기가 좋아 이주 없이 몇 대에 걸쳐 사는 토박이가 많다. 그렇다보니 손으로 세공을 하는 산업이 발전했다. 프라다가 자사의 공장 3곳을 이곳에 세운 이유기도 하다. 아치오는 프라다를 이끄는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의 남편인 파트리지오 베르텔리 프라다 회장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아치오에서 레바넬라란 지역에 위치한 프라다 구두공장은 연간 30만 켤레, 하루 2500켤레의 구두를 수작업으로 만드는 주력 생산시설이다. 공장이라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건물 안팎은 제약회사 연구소 느낌이 물씬 났다. 건물 전체가 유리로 덮여 있고 건물 주변에 대나무를 심어 동양적인 분위기가 묻어났다. 프라다코리아 홍보팀 김주연 대리는 “3년 전 준공된 이 공장의 콘셉트는 ‘친환경’”이라며 “패션회사라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소요되는 에너지와 자원의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태양광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올해 봄여름에 선보일 구두 샘플이 가득했다. 크리스털을 슈즈 앞머리에 단 스틸레토 힐부터 런웨이에서 봤던 뱀피 가죽 킬힐까지 여심을 흔드는 ‘드림슈즈’가 미완성된 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었다. 막 만들어진 구두에서도 특유의 화학 냄새가 나지 않았다. 김주연 대리는 “화학 접착제 대신 천연 접착제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디자인실에는 거칠게 스케치된 구두 디자인 도안들이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다. 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유명 디자이너들처럼 ‘슥삭슥삭’ 거칠게 그려댄 디자인 초안으로는 바로 생산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영화 속에는 나오지 않는 실무자들이 디자인을 현실화하는 역할을 한다. 수십 년간 제품 생산에서 일했던 숙련공들이 디자이너의 영감을 제품으로 연결시키는 것.
디자이너가 제시한 디자인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소재를 잘라야 할지, 바느질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현장에서 결정해 또 다른 도안을 만들어 낸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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