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옷이라 하면 특별한 의례나 명절에 선물 받는 귀한 존재였다. 고려 조선시대의 궁중의상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불과 십수 년 전에도 철이 바뀌면 한 벌씩 맞추어 장만하는 귀중한 생활 자산이었다. 또 추석빔이나 설빔이라 하여 가족이 손꼽아 기다리는 대상이었다. 기성복이 보편화된 이후에도 중매 잘 서서 옷 한 벌 얻어 입었다고 말할 정도로 소유하고픈 욕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특수복이나 전통복식을 제외한 기성복이 곧 패션이라 할 만큼 대량 생산과 대량 유통의 시대에 사는 소비자에게도 옷은 여전히 백화점의 고가시장 아니면 시장 위주의 저가 시장으로 양분되어 구입할 때 고민과 망설임을 경험하게 한다. 여기에 직격탄을 날린 요인이 전 세계적 경제불황이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심리는 변화하는 유기체마냥 꽁꽁 얼어붙다가도 좀 좋아졌다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르르 녹아버린다. 경제 불황의 여파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지갑 열기가 불안한 소비자는 거품이 꺼진 후의 허탈함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꿰뚫어서 의류업계는 가격으로 승부하고 고급화된 매장으로 다가갔다. 또 세련된 광고 비주얼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디자인으로 소비자의 욕구에 옷을 입혔다. 비싸게 사기는 싫다, 허름한 시장을 찾아가며 원하는 옷을 찾는 서글픔도 느끼기 싫다, 무슨 브랜드 입었다고 이야기해봤자 알아주지 않는 창피함도 싫다, 유행에 뒤져 보이기도 싫다는 심리적인 모든 욕구를 알게 모르게 다 해결해 준 셈이다.
국내 브랜드도 SPA 패션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외국의 패션기업 못지않게 성공했으면 싶다. 일본이 소니와 도요타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확대한 이후 날생선을 먹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던 서양인이 초밥을 고급화된 식문화로 받아들였다. 또 패션을 비롯한 디자인 미술 문학 만화 등 일본의 문화 콘텐츠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국 기업이 세계로 뻗어가듯 한국의 식문화가 웰빙 또는 슬로 푸드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흐름이 문화의 다른 분야에도 확대되리라 본다. 글로벌 SPA 브랜드의 출생지가 파리 밀라노 뉴욕 같은 패션도시가 아니라 스웨덴이듯이 우리도 패션의 변방에서 승리의 북소리를 울릴 수 있으리라 소망한다.
H&M이라는 업체가 스웨덴 특유의 실용적인 철학관을 반영하고 유니클로가 일본 젊은이의 스트리트 룩을 보여주듯이 우리 SPA 브랜드는 무엇을 보여줄지가 성공의 관점이다. 우리만의 정체성과 스토리, 콘셉트가 없으면 과거의 중저가 패션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외국 출장을 갈 때마다 국내에 아직 들어오지 않은 SPA 브랜드의 제품을 사달라는 부탁을 받았듯이 국내 SPA 브랜드를 사서 보내달라는 부탁을 외국의 지인에게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대접을 받아야 패스트푸드 같은 패스트 패션이 아니라 특별한(Special) 자부심(Pride)을 가질 수 있는 SPA 브랜드가 아닐까.
간호섭 디자이너·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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