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학자들 독립운동사 외면 심화된 연구 점점 줄어”

  • 입력 2009년 3월 9일 02시 57분


김용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우리 역사를 반추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1919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3·1운동은 종교, 남녀, 반상(班常), 지역의 벽을 넘어 우리 민족이 하나로 뭉친 국내 사상 처음 일어난 대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90돌을 맞은 오늘날, ‘3·1운동을 비롯한 독립운동사는 이미 다 안다’며 학계와 일반인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게 현실입니다.”

김용덕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사진)은 8일 “동아일보와 공동기획한 연재기획 ‘3·1운동 90돌…다시 찾은 현장’에서 알 수 있듯이 3·1운동이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가고 있다”며 “3·1운동 90주년은 오늘의 우리를 재인식하는 계기이자 국권상실 100주년인 2010년을 준비하는 해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근대사를 전공한 김 이사장은 “3·1운동은 전개 양상과 더불어 민족사적 성격을 지닌 국내 요인과 이를 세계사 속에서 어떤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는지를 알아보는 국외 요인 등에 대한 양방향의 연구가 균형을 갖춰야 한다”며 “3·1운동 정신은 국내외로 확산돼 단순한 반일운동이 아니라 근대적 민주주의의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세계화 시대인 오늘날에도 되새겨볼 만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동북아역사재단이 만들어 2012년부터 고교 선택 과목이 되는 ‘동아시아’ 역사교과서에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적극 반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와 손잡고 3·1운동 연구를 체계화하고 3·1운동의 가치를 실증 자료로 뒷받침하기 위해 세계에서 3·1운동을 어떻게 인식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자료도 집중 발굴할 방침이다.

그는 3·1운동이 민주공화정을 외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거쳐 대한민국의 정통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독립운동의 차원을 넘어 근대 한국 민족주의의 시초이자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 이사장에 따르면 3·1운동 연구는 한국의 독자성이 강조되던 1960, 70년대 집중 조명을 받았으나, 젊은 학자들이 일제강점기에서 현대사로 학문적 관심을 옮기면서 3·1운동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있다.

근대사 연구 중에서도 구한말 열강의 간섭, 일제 침략 등 ‘자극적인 분야’로만 연구가 몰리면서 전국 각지에서 확산된 3·1운동에 대한 연구는 더욱 더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한국은 일제의 침탈이라는 특수한 근대사를 안고 있기 때문에 일제의 강점에 우리 민족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연구하는 독립운동사에 대한 균형 있는 연구가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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