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나라 黃侃(황간)은 九夷란 樂浪(낙랑) 高麗(고려) 倭人(왜인)을 가리킨다고 했으나 수긍하기 어렵다. 널리 동방의 지역을 의미하는 말로 보면 좋다. 陋는 鄙陋(비루)함이다. 如之何는 방법이나 행위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어투다. 何陋之有는 何有陋를 도치시켜 강조하는 어법이니, 같은 구형의 何難之有(하난지유)도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이 章은 당나라 劉禹錫(유우석)이 「陋室銘(누실명)」에서 “남양에는 諸葛孔明(제갈공명)의 초가집, 서촉에는 揚雄(양웅)의 정자가 있었나니, 공자는 무슨 누추함이 있겠는가 했도다”라고 인용함으로써 덕 있는 사람은 누추한 집에 살더라도 향기를 뿜는다는 뜻을 나타내게 됐다. 허균도 ‘누실명’을 지어 “내 마음 고요하고 이 몸 편하거늘, 누가 누추하다 하는가” 하고는 공자의 이 말로 매듭지었다. 章의 일부 뜻만 끊어다 쓰는 斷章取義(단장취의)의 일종이다. 하지만 心安身便(심안신편)의 거처라면 누추해도 高臺廣室(고대광실)이 부럽지 않다는 정신 경계를 잘 드러내지 않았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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