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者, 仁者, 勇者는 각각 知, 仁, 勇을 구현하는 사람을 말한다. 惑(혹)은 헷갈림, 憂(우)는 염려함, 懼(구)는 두려워함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事理를 밝게 비춰보므로 疑惑(의혹)이 없고, 어진 사람은 항상 天道를 즐기므로 걱정이 없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氣力이 義理와 부합하므로 두려움이 없다. 삼달덕 가운데 仁이 極處(극처)에 이르면 知와 勇은 절로 그 속에 있다고 볼 수도 있고, 知야말로 頭腦(두뇌·긴요처)라고 볼 수도 있다. ‘중용’은 삼달덕의 구현은 誠에서 시작하고 誠으로 관통된다고 덧붙였다.
조선후기의 成大中(성대중)은 ‘靑城雜記’(청성잡기)에 ‘삼달덕을 갖춘 산골 백성’의 일을 적어 두었다. 한 백성이 산에서 호랑이와 마주치자 재빨리 나무로 올라갔다. 그 사람은 호랑이가 겁을 먹으면 달아난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나뭇가지와 옷의 솜을 던졌다. 하지만 호랑이는 그것들을 깔고 앉아서는 으르렁거렸다. 이번에는 부싯돌을 쳐서 불을 내어 솜에 싸서 던졌다. 그러자 호랑이 꽁무니에 작은 불꽃이 일더니, 때마침 바람이 불자 돌연 불길이 솟았다. 호랑이는 기겁을 하고 달아나다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성대중이 이야기를 통해 말하려고 했듯이, 인간은 누구나 삼달덕을 갖추고 있으며, 그 가운데 지혜는 학식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현대 사회학은 專門知(전문지) 이외에 民間知(민간지)도 지혜의 하나로서 존중한다. 우리의 교육은 지혜의 발현을 도와주는가? 지식의 과잉을 조장하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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