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에 쏟아진 비판은 자유주의 전반에 대한 공세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마르크스주의도 최근 재조명받고 있다.
이런 현상과 맞물려 윤평중 한신대 교수(사회철학·사진)가 최근 ‘급진자유주의 정치철학’(아카넷)을 내고 진정한 자유주의의 가치를 모색한다. 이 책에서 ‘급진(radical)’이라는 말은 자유주의의 문제점을 뿌리부터 성찰하고 개혁하며, 시대적인 요구를 유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그에게는 뉴라이트와 같은 신우파, 진보세력 또는 좌파의 자유주의 담론이 모두 비판의 대상이다. 그는 2004년 말 21세기형 자유주의를 내세우며 출범한 자유주의연대는 뉴라이트 자유주의 담론의 ‘이론의 빈곤’을 보여준다고 비판한다. 현실적으로 필요한 분배정의와 민주적 시민권에 대한 비전은 없고 정치적 욕망만 과도했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진보 또는 좌파 진영의 경우 1999년 범(汎)진보 진영의 학술지 ‘진보평론’이 출범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비전의 근간으로 삼았던 기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주의 패러다임 안에 갇혀 자유주의가 현실에서 거둔 민주적 시민권 신장과 시장경제의 성과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보수 진보 담론을 불변의 실체처럼 여기는 ‘주의(主義)화’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대자동차와 같은 대기업 노조의 극한투쟁에 지지를 보내는 게 진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를 제기한다. 중소기업 근로자나 실업자, 구직자의 처지를 생각하면 기득권 재생산의 논리를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것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북한 체제에 유화적이면 진보, 비판적이면 보수로 규정하는 것도 ‘단선적 몽매주의’에 불과하다고 그는 말한다. 한반도의 전쟁을 반대한다는 전제에서 사안별로 진보적 태도를 취할 수도, 보수적 행동을 택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또 한국 정치에 있어 ‘나(우리)=진리, 남(상대)=비(非)진리’라는 ‘진리정치’의 폐쇄성을 비판한다. 그는 “노무현 정권이 정치적 경쟁자를 ‘정치적 비진리 자체(수구반동세력)’라고 단죄하고 줄기차게 ‘남 탓’을 하면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나무랐던 것은 폐쇄적인 진리정치의 이념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 대해서도 “2009년 현실에서 퇴행적인 이명박 정부를 꾸짖으면서 고압적으로 구사하는 신앙과 양심의 수사학도 진리정치의 21세기적 판본”이라고 말했다. 엘리트가 계몽하는 진리정치가 아니라 가정과 회사 등 시민의 ‘삶의 장(場)’에 대한 권력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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