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의 학자들 사이에 새로운 학문이 확산됐다.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서양의 수학과 천문학이었다. 전통적으로 셈을 하거나 하늘을 살피는 학문은 중인 계층의 일이었다. 그러나 서양의 수학과 천문학에 대한 반응은 달랐다. 사대부들 사이에 수학 공부 붐이 일었고, 청나라에서 한자로 번역한 서양 수학책을 구해보기 위해 인맥을 동원하는 일까지 생겼다.
조선 지식인 사회의 수학 공부 붐을 소개하는 논문들이 발표된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주최로 27일 연구원 강당에서 열리는 ‘한국의 기록문화와 법고창신’ 주제의 국제심포지엄에서 한국, 중국 학자 4명이 조선 지식인의 수학 공부, 조선과 청나라의 천문학 교류 등을 발표한다.
구만옥 경희대 교수는 미리 낸 발표문 ‘조선후기 지식인 사회의 서학서(西學書) 유통’에서 황윤석(1729∼1791)이 남긴 일기 ‘이재난고’를 분석해 당시 상황을 상세히 소개했다.
노론계 유학자였던 황윤석은 서양 수학과 천문학, 율력학에 재미를 붙인 뒤 먹고 자는 것을 잊을 정도로 빠져들었으며 ‘수리정온(數理精蘊)’ ‘역상고성(曆象考成)’ 같은 서양 책들을 읽었다. 1762년 어느 날의 일기에는 그가 서양 과학서 ‘천학초함(天學初函)’을 빌리기 위해 사방으로 부탁을 하고 애쓰는 모습이 잘 나타난다. 또 다른 일기에선 서양 수학책을 많이 갖고 있는 학자를 방문한 뒤 ‘역시 사람은 수도 한양에 살아야 한다’고 결심하기도 했다. 1761년 일기에는 다른 학자들과 밤을 새우며 수학에 대해 토론했다는 기록도 있다.
‘18세기 후반 한국의 식자층 수학자의 등장과 새로운 수학 문화’를 발표하는 임종태 서울대 교수는 “수학은 중인들이 담당하는 것으로서 양반 사대부의 지적 탐구 대상으로는 적합지 않다고 여겼던 조선의 유교사회에서 식자층 수학자들이 등장함으로써 한국 수학사에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식자층 수학자들은 수학, 천문학, 지도 제작 등에 대한 관심사를 공유하면서 지식과 서적, 기구의 유통을 활발하게 하는 지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들은 또 수학, 천문학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중인은 물론이고 도구를 제작하는 하층민과도 협업했고 중국의 학자들, 베이징에 있던 가톨릭 신부들과도 교류했다. 임 교수는 “서명응 같은 학자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서 왕에게 전국 각 지방에서의 천문 관측이 필요하고 정확한 조선 지도를 그려야 한다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스윈리(石云里) 중국 과학기술대 교수는 ‘천문학과 외교’에서 일식이나 월식의 예측과 관측을 매개로 이뤄졌던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천문 외교’를 조명했다. 당시 일식, 월식 같은 천문 현상은 통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중국에서 일식은 하극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월식은 여성 통치자에게 일어날 재앙의 예고로 해석됐다. 스 교수는 “청나라는 일식, 월식 예고를 규칙적으로 조선에 보냈고 조선에서 관찰된 일식, 월식에 대한 보고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런 ‘천문 외교’는 1648년 시작해 100년 가까이 진행됐다.
궈스룽(郭世榮) 중국 네이멍구대 교수는 ‘중국 수학논문의 전파와 한국 수학자들의 혁신’에서 “17∼19세기 80종의 수학서가 중국을 통해 한국에 들어갔다”면서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수학의 전파는 조선 지식인 사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고 말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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