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不忍人之心(불인인지심·남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마음이라 주장하고, 우물에 막 빠지려고 하는 어린아이를 보면 누구나 아무 목적의식이나 어떤 이해관계 없이도 염려하고 측은해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는 점을 사례로 들어 그 명제를 입증하고자 했다. 이어서 맹자는 남의 불행을 측은해하는 惻隱之心(측은지심) 이외에 자기의 不善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不善을 미워하는 羞惡之心(수오지심), 남에게 양보하는 辭讓之心(사양지심), 正을 옳다 여기고 不正을 그르다고 여기는 是非之心(시비지심)도 모두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런 후 위의 글에서 맹자는 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과 仁義禮知(인의예지)의 관계를 논했다. 知는 智와 같다.
‘惻隱之心은 仁之端也니라’는 ‘측은해하는 마음은 仁의 端(단)이다’로 풀이한다. ‘A는 P이다’라는 논리 형식으로, 이하의 세 문장도 같다. 그런데 端(단)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이 글은 해석이 달라진다. 우선 한나라 때 趙岐(조기)는 端을 머리 首로 보았다. 이 설에 따르면 측은지심은 仁이라는 궁극적 가치에 이르게 되는 萌芽(맹아)로 간주하게 된다. 한편 남송의 주자(주희)는 端을 실마리 緖(서)로 간주해서 마치 물건이 속에 있으면 실마리가 밖에 나타나 있는 것과 같다고 풀이했다. 이 설에 따르면 측은지심은 情(정)이고 仁은 性(성)으로 구분되어, 남을 불쌍히 여기는 情이 발동하면 仁이라는 性이 本然(본연·본래 그러함)함을 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조선의 학자들은 대부분 주자의 설을 따랐다. 주자는 惻隱, 羞惡, 辭讓, 是非는 情이고 仁, 義, 禮, 知는 性이라 구분하고, 인간의 心은 性과 情을 통괄하는 것으로 보았다.
인간은 惻隱, 羞惡, 辭讓, 是非의 마음을 확충해서 仁義禮知의 궁극적 가치를 이룰 수 있다. 혹은 惻隱, 羞惡, 辭讓, 是非의 情이 발동하는 것을 통해 仁義禮知의 본성을 확인할 수도 있다. 惻隱, 羞惡, 辭讓, 是非의 마음(혹은 情)과 仁義禮知의 가치(혹은 본성)가 인간에게 보편적인 것임을 어느 정도 인정해야만 우리는 조화로운 인간관계와 사회 조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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