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이 될 때까지’ 중에서》
1979년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나는 젊고 힘센 산양처럼 뿔과 발굽에서 불꽃과 먼지를 일으키며 시의 상봉, 상상봉을 내달리는 느낌을 주는 시를 만났다. 문학에 뜻을 두기 전이었지만 용돈을 아껴 그런 시가 알알이 들어찬 시집 ‘무인도를 위하여’를 샀다. 시인의 첫 시집이기도 하고 내가 돈 주고 산 첫 번째 시집이며. 내가 잘못 판단했을 경우 혼자만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여러 사람에게 꼭 사서 읽으라고 권한 최초의 시집이기도 하다.
시집 표지를 넘기자 표지 안쪽 하단에 시인의 약력이 소개되어 있었다. 맨 뒷부분에 ‘자연 속에서 현대인의 내면 정황을 포착하는 유니크한 시세계를 보이고 있다’라는 표현이 내 마음에 경외감과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사전에서 ‘unique’를 찾아서 ‘유일무이한, 독특한, 진기한’이라는 뜻을 새기며 수십 번을 써보았다.
‘죽은 사람이 살다간 南向(남향)을 묻기 위해/사람들은 앞산에 모여 있습니다//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 소년들은 잎 피는 소리에 취해 山(산) 아래로 천 개의 시냇물을 띄웁니다. 아롱아롱 山울림에 실리어 떠가는 물빛, 흰 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 나비로 날아와 앉고 저 아래 저 아래 개나리꽃을 활짝 피우며 활짝 핀 누가 사는지?//조금씩 햇빛은 물살에 깎이어 갑니다, 우리 살아 있는 자리도 깎이어 물 밑바닥에 밀리는 흰 모래알로 부서집니다./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흰 모래 사이로 피라미는 거슬러 오르고/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그대를 위해 사람들은 앞산 양지쪽에 모여 있습니다.’(흰 나비를 잡으러 간 소년은 흰 나비로 날아와 앉고’)
되풀이해서 읽다 보니 눈물이 날 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무리 읽어도 뼈처럼 단단한 시는 물러지지 않고 식상하지도 않았다. 정련된 우리말 표현과 날카로운 감각, 교과서에서 배운 내재율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노래의 울림은 그때까지 알고 있던 어떤 시보다 천연스럽게 시다웠다. 그러면서 시가 그토록 나의 ‘생활(生活)’-태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에 가까워 보일 수 없었다. 그러면서 시인은 상상하기 힘든 고독과 초극의 의지를 동무처럼 동반하여 어디론가 끝없이 달아나고 있었다.
20여 년 후 만난 신대철 시인은 비무장지대와 몽골, 바이칼 호수와 알래스카, 그리고 정신과 육신의 극오지를 두루 다녀온, 육체와 정신 양쪽 모두 군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단단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또한 내가 마음속 깊이 경외하는 바요 동경하는 바였으니 그는 언제나 나보다 먼저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득한 무인지경, 인적 끊어진 절경으로.
성석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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