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꿈결 같은 숲 여행 그리고 일본 전통 휴식의 미학

  • 동아일보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한국 최초의 휴양지는 어디일까. 호수와 송림에 둘러싸인 원산(북한) 앞바다의 명사십리 해변이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이곳을 휴양지로 삼은 이는 당시 외국인 선교사였다. 일본은 어떨까. 최초 휴양지는 나가노 현 가루이자와다.
해발 1000∼1200m의 고원으로 낙엽송과 전나무의 울창한 숲 덕분에 한여름 기온이 섭씨 25도를 넘지 않는다.
여기를 휴양지로 삼아 별장을 지은 이 역시 외국인 선교사다. 1887년의 일이다. 동양에 리조트 문화를 도입한 이는 서양인이다.
여기에 새 바람이 불고 있다. 지역성과 고유문화를 바탕으로 한 ‘우리식 편안함’의 추구다. 쉼 하나에도 동양식 사고와 철학,
문화를 담으려는 뒤늦은 시도다. 그 반향이 예사롭지 않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는 이 분야의 선두이자 개척자로 평가받는 일본 료칸의 미래형이다.
개업 101년 만인 2005년에 환골탈태의 실험정신으로 옛 료칸 자리에 새로 지어 다시 문을 연
리조트형의 신개념 료칸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로 여행을 떠난다.》

[2]신개념 료칸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깜깜한 밤중. 호젓한 숲 가의 작은 호텔에 도착했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리셉션(손님을 맞는 곳)이었다. 실내로 들어서자 고급스러운 실내장식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소파에 앉아 웰컴 드링크를 마시는데 은은한 타악기 소리가 들려왔다. 바닥에 ‘ㄷ’자 형태의 틀을 설치하고 거기에 10여 종의 동양 타악기를 매달아 만든 ‘야쿠라’로 연주한 명상음악이었다. ‘비(非)일상감’의 실현을 추구한다는 이 료칸의 모토를 생각나게 하는 인상적인 이벤트였다.
체크인을 마치자 여직원이 차량으로 안내했다. 차를 몰고 온 손님도 여기서는 차를 두고 호텔 차량으로 숙소에 간단다. 7, 8분 걸렸을까. 가는 길은 온통 빽빽하게 나무로 뒤덮인 숲 속이다.
도착한 곳은 쓰도이(프런트 데스크가 있는 곳). 이곳 실내는 리셉션과 완연히 달랐다. 높은 천장에 넓은 라운지, 누워서 책도 보는 라이브러리와 계단식의 식당도 있는 거대한 휴식공간이었다. 오가는 사람의 옷차림도 달랐다. 요가 복을 연상케 하는 편안한 바지차림인데 숙박객과 종업원의 옷 디자인이 비슷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한 벌에 45만 원을 호가하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신 개념 ‘휴양복’이었다.
단 몇 분간의 숲 속 자동차여행. 그 새에 세상은 확 바뀌었다.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일본 애니메이션), 아니 무릉도원을 찾는 꿈결여행에 견줄만하다면 지나친 과장일는지. 그렇다. 이것이 호시노야 가루이자와가 추구한다는 ‘비일상감’의 제1막이다.
휴식의 극대화를 일상의 단절에서 찾는 것은 이미 낡은 서양식 문법이다. 호시노야가 여기서 그칠 리 없으니 지금부터 호시노야가 개발한 그보다 한 수 위의 새로운 휴식비전(秘典)을 즐길 차례다.
객실까지 가는 길은 예상보다 멀었다. 객실 77개의 료칸인데도 정원이 어지간한 리조트 못잖게 넓었기 때문이었다. 유가와라는 계곡물이 흐르는 정원에는 계단식 논처럼 조성한 풀밭도 몇 배미 보였다. 그 길을 지나 객실에 들어선 순간, 그 규모와 고급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됐다. 지난 13년간 일본의 수십 개 료칸과 호텔을 들락거렸지만 이렇듯 넓고 고급스러우며 독특한 인테리어의 객실을 만나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널찍한 원룸형 객실은 베란다와 더불어 히노키 탕(편백나무 욕조의 탕)까지 갖췄다. 그 욕실은 두 벽이 통유리창이었다. 블라인드만 걷으면 노천탕처럼 풍경을 감상하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었다. 이부자리도 특별했다. 전통 료칸의 후동(일본식 이부자리)을 침대 높이의 나무침상에 깐 것이다. 실내를 고급스럽게 아우른 것은 은은한 간접조명의 불빛. 아늑하게 실내공간을 연출한 조명과 인테리어 솜씨는 가히 일류라 할 만했다.
이른 아침 이 료칸이 자랑하는 메이소요쿠(명상욕장)를 찾아 객실을 나섰다. 언덕 위 욕장에 다가갈수록 호시노야 가루이자와의 모습이 점점 더 명료하게 드러났다. 멋졌다. 계곡의 물가 양편에 자리 잡은 삼각지붕의 객실 건물이 호수처럼 보이는 계곡물과 숲, 저 멀리 산과 더불어 어울린 모습. 한 편의 그림보다는 한 수의 시라고 부르고 싶었다. 그 조화가 너무도 시적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 아닐까. 호시노야가 준비한 제2막이. 총지배인 요시카와 류지 씨가 내게 들려준 말을 십분 깨달았다. “일본이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아 왔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요.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는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또 하나의 일본’을 여기에 지어 보여 주려고 합니다.”
료칸에서 지내는 동안 순간순간 제3막도 맛보았다. 그것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바지차림의 휴양복처럼 전통을 지키면서 동시에 현대적 편의성을 가미한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브랜드의 료칸 문화다. 침대의 편안함을 갖춘 평상 위 후동, ‘1박 2식’의 전통과 의무조항을 버리고 투숙객의 식사 선택권을 넓힌 파격적인 운영 방침, 객실에서 즐기는 로텐부로(노천욕장) 개념의 통유리창 실내탕 등이 그 예다. 물론 그러면서도 료칸 밖에 멋진 식당을 여러 곳 두고 지근거리에 대체욕장(온천 및 로텐부로)도 두어 편의를 돕고 있다.
제4막은 매일 오후 해질녘에 펼쳐진다. 어둠이 찾아오면 계곡은 수면을 장식한 유등(물 위에 띄울 수 있도록 만든 등롱)의 영롱한 불빛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유등은 손님들이 띄운 것. 삿갓 쓰고 뱃놀이를 하던 ‘미즈안도’라는 민속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전통과 지역성을 휴식이라는 미학에 접목시키려는 노력, 이것이 호시노야를 일본 료칸의 미래형으로 부르게 하는 한 요소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는 1904년 호시노야 온천에서 문을 연 103년 역사의 온천 료칸. 소유주는 일본 최고(最古) 역사의 리조트 전문 경영회사인 호시노 리조트의 대표인 호시노 요시하루 씨로 창업자로부터 4대째 대물림 운영 중이다.
나가노=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홈페이지=www.hoshinoya.com ▽주소=나가노 현 가루이자와 정 호시노야 ▽찾아가기=도쿄역에서 신칸센 탑승(시간당 두세 편 운행), 가루이자와 역 하차(1시간 10분 소요). 역∼리셉션 택시로 15분. ▽식사=료칸 식당은 ‘가스케’(일식)뿐으로 아침(오전 7시∼정오)과 저녁(오후 5∼10시·예약 필수)에만 운영. 아침 3520엔, 저녁 1만3860엔. 지근거리에 손민쇼쿠도(캐주얼 일식당·오전 11시∼오후 10시·사진)와 헝그리스폿(스낵 카페·오전 9시∼오후 11시), 노원즈레서피(캐주얼 프랑스식당)가 있다(셔틀버스 운행). ▽온천욕=료칸에는 메이소요쿠(명상욕장) 하나뿐. 지근거리의 손민쇼쿠도 옆에 대욕장(로텐부로 포함) ‘톰보노유’가 있다. △메이소요쿠=개장 오후 3시∼다음 날 오전 11시 30분(오후 11시∼다음 날 오전 6시 이용 시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아야 입장) △톰보노유=투숙객 전용은 오전 9∼10시. 이후 오후 10시까지 유료로 일반 공개(투숙객 무료). ▽호시노야 스파=물가에 위치, 80분 트리트먼트에 1만8000∼2만1000엔. ▽기타 시설=라이브러리와 어린이방(3세 미만), 부티크숍이 쓰도이에 있다. ▽객실료=1박(2인 1실의 1인 요금) 2만2000∼4만 엔. 최소 2박부터 예약 가능
◇가루이자와
▽역사=19세기 말 서양인 선교사의 별장 입주를 계기로 일본 최고의 별장지로 발전한 고원 휴양지. 현 일본 왕 부처의 로맨스가 시작된 테니스코트가 여기에 있다. ▽규가루진자=옛 가루이자와 역 주변의 상점가로 400여 개의 부티크숍과 레스토랑, 상점이 있다. 과일 잼 전문점 ‘사와야’가 유명. ▽가루이자와 프린스 쇼핑플라자=JR가루이자와 역과 붙어 있는 거대한 아웃렛. 도쿄에서 쇼핑하러 올 정도로 인기다.
○ 호시노야 가루이자와 패키지상품
이오스여행사(www.ios.co.kr)는 24시간 휴대전화 통역서비스로 일본어를 할 줄 몰라도 안전하게 찾아갈 수 있는 상품을 판매 중. ‘항공권+료칸 2박+신칸센 탑승권+송영서비스(가루이자와 역∼료칸)+여행안내서’로 구성되며 가격은 △3일 일정 168만 원부터 △4일(도쿄 1박 추가) 일정 179만 원부터. 문의 홍은주 과장, 안경진 씨(www.ryokan.co.kr), 02-546-4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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