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에게 말 걸기 20선]<8>과거를 추적하는 수사관, 고고학자

  • 입력 2009년 6월 19일 02시 56분


◇과거를 추적하는 수사관, 고고학자/볼프강 코른 지음/주니어김영사

《“고고학자들은 언제나 온몸이 땀에 푹 젖은 채로 고단한 노동에 허덕인다. 동틀 무렵부터 해질녘까지 몇 달이고, 발굴 터를 한 층 한 층 파헤치면서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는 단조로운 작업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다 조그만 유물 조각이라도 발견하면 당장 모든 발굴 정황을 최대한 상세히 기록해 놓아야 한다. 지금은 조금도 중요할 게 없어 보이는 아주 사소한 상황이나 조건이 훗날 그 유물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디아나 존스, 실존 인물이 모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자는 누굴까. 평소 이 분야에 관심을 둔 사람이라면 1870년대에 트로이와 미케네 유적을 발굴했던 독일의 하인리히 슐리만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이라는 학문의 아련한 매력을 대중에 폭넓게 각인시킨 인물은 아무래도 중절모를 눌러 쓴 채 채찍을 휘두르는 허구의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다.

독일 하노버에서 과학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책머리에서 “정말 고고학자들은 존스 박사처럼 대단한 모험가일까?”라고 자문한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창조해낸 인디아나 존스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캐릭터다. 미국 시카고대의 로버트 존 브레이드우드 교수(1907∼2003)가 주인공. 그가 존스 박사처럼 채찍의 달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영화 속 인디아나 존스처럼 여느 고고학자와 다른 기인(奇人)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다.

브레이드우드 교수는 1940년대에 혈혈 단신 중동 쿠르디스탄 산악지대로 발굴 여행을 떠났다. 당시 고고학 발굴은 박물관 또는 대학의 재정적 지원을 받기 위해 진귀한 고대 예술품이 나올 가능성이 큰 지역만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름 없이 살다 죽어간 가난한 이들의 흔적을 찾는 데 집중한 브레이드우드 교수는 그런 지원을 얻기 어려웠다.

‘인류 최초의 농부’를 찾으려 했던 그는 “황금이나 왕의 무덤은 쫓아다니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치안이 불안정한 지역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브레이드우드 교수는 결국 6000여 년 전 선사시대 농경문명 흔적인 메소포타미아 고원 주변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발견했다. 인디아나 존스 같은 대담성과 상상력, 끈질긴 노력이 어우러진 결실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브레이드우드 교수가 저서 ‘고고학자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1960년)에 남긴 문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는 “범죄사건 해결에 나선 훌륭한 수사관이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은 고고학자들과 거의 비슷하다”라고 썼다.

인기 미국 드라마 ‘CSI’에서 보듯 범죄사건 과학수사관은 자잘한 현장 증거를 하나하나 꼼꼼히 수집하고 분석하는 단조로운 작업에 매달린다.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는 언제나 사소한 흔적을 파헤치는 무미건조한 작업 끝에 나오기 때문이다. 확실한 단서를 얻고 난 뒤에야 용의자에 얽힌 퍼즐을 맞추기 시작할 수 있다.

고고학자의 작업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범죄 수사관처럼 현장에 붙어살면서 자질구레한 흔적을 찾아 헤맨다. 일을 저지른 ‘용의자’가 벌써 수천 년 전에 죽어버려서 사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차이가 있다. 저자의 말대로 고고학자는 “아득한 과거를 추적하는 고독한 수사관”인 셈이다.

“고고학을 흔히 ‘삽질 학문’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고고학자들은 그런 비아냥거림에 개의치 않는다. 실제로 중요한 역사적 자취와 유물은 ‘삽으로’ 파내야만 찾아볼 수 있다. 예리한 수사관들이 그렇게 하듯이,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세계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흥미진진한 탐험을 시작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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