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년 전이다. 토, 일요일 밤마다 50, 60대를 TV 앞으로 불러 모은 어느 인기 드라마에서 주인공 정도전의 스승 이색(李穡·1328∼1396)에 대한 시청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고려를 지키려고 했으니 말이다. 어디에서 그런 고집이 나왔을까? 이색의 시 한 수를 읽어보자.
‘술 속의 영특한 기운만 있으면/어디에 기대지 않아도 되네/가을 이슬처럼 둥글게 맺혀 밤이 되면 똑똑 떨어지네/ … 반잔 술 겨우 넘기자마자 훈기가 뼛속까지 퍼지니/표범 가죽 보료 위에 앉아 금으로 만든 병풍에 기댄 기분이네’(‘목은시고’ 제33권)
이 시의 제목은 ‘서린(西隣)의 조 판사(趙判事)가 아랄길(阿剌吉)을 가지고 왔다. 그 이름을 천길(天吉)이라고 하였다’이다. 서린은 고려 수도 송도의 태평관(太平館) 서쪽에 있던 양온동(良온洞)을 말한다. 조 판사는 고려 말 문신이었던 조운흘(1332∼1404)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아랄길’은 무엇일까? 아랄길은 땀이라는 뜻의 아랍어 ‘아라끄(araq)’에 어원을 둔 ‘아라크(arrack)’의 한자 차음이다. ‘아랄길’과 비슷한 한자가 가장 먼저 발견된 책은 원나라 때 항저우(杭州)의 책방에서 목판으로 인쇄한 ‘거가필용사류전집(居家必用事類全集)’이다. 이 책의 ‘국주류(麴酒類)’ 중 ‘남번소주법(南番燒酒法)’이라는 제목의 요리법이 나온다. 저자는 제목 옆에 ‘번(番)에서는 아리걸(阿里乞)이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결국 아리걸이나 아랄길이나 모두 소주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남번소주’일까. 이 시기 남번은 지금의 인도네시아 자바 섬 일대를 가리켰다. 섬 동쪽에 있던 마자파힛 왕국에는 13세기 중반부터 인도 서부에서 이주한 무슬림과 중국 남부에서 온 상인들이 많았다. 중국 상인들이 즐겨 마셨던 청주 계통의 황주가 쉽게 쉬어버리자 그들은 무슬림이 가지고 온 아랍식 증류법으로 저장 기간을 늘렸다.
아랄길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먼저 위아래가 뚫리고 대나무 대롱이 박힌 항아리를 솥에 올린다. 항아리 위에는 찬물이 들어 있는 그릇을 놓는다. 솥에 불을 때면 청주가 끓어 수증기로 변해 위로 올라간다. 수증기가 찬물을 담은 그릇과 만나면 이슬이 돼 대롱을 타고 밖으로 흘러나온다. 이색은 시에서 아랄길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묘사했다. 가을 이슬처럼 똑똑 떨어진다고. 천장에서 내려온다고 하여 ‘천길’이란 이름을 붙였다. 이슬 때문에 노주(露酒)라고도 불렸다. 중국인들은 황색의 술을 증류했는데도 흰색이 나온다고 해서 백주(白酒)라고 했다.
이색의 마지막 시구는 주당이라면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빈속에 증류주 한 모금을 쏟아부으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바로 그 기분. 그는 이를 왕이 된 듯하다고 비유했다. 이색은 54세 되던 해인 우왕 8년(1382년)에 이 시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그는 벼슬에서 물러나 ‘한산군’에 봉해져 녹봉을 받고 있었지만, 우왕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이 시를 쓴 이듬해 고향에서 은거하던 그의 제자 정도전은 함주로 가서 이성계의 참모가 됐다. 애제자 정도전이 청주에서 독한 소주로 변할 줄 이색은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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