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통을 왈각왈각 흔들어서 거꾸로 잡아 산대를 빼어 세어보고 부채를 두드리며 점괘를 푼다. 판수 고개를 갸웃거리며 “춘향아!”하고 부른다. “예.” “점괘가 매우 묘리 있다. 천을귀인(天乙貴人)이 지세(持世)한데 응(應)이 세(世)를 생하였으니, 이도령이 과거(科擧)하여 청포를 입은 격이요, 천복귀인성(天福貴人星)에 역마(驛馬) 발동(發動)하였으니 분명 외임(外任)하여 나가는 형상이요, … 열읍 수령 관속들을 형추파직(刑推罷職)할 것이니, 암행수의(暗行繡衣) 분명하다. … 이애 춘향아, 부디부디 잘 조섭하여 염려 말고 두고 보라. 평생에 못 잊던 낭군이 미구에 올 것이니 두고 보라.’
춘원 이광수(1892-1950)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일설 춘향전’(1925년 12월 18일 자)의 한 대목이다. 춘원이 ‘고본 춘향전’을 현대적 감각으로 개작한 이 소설에서는 점쟁이 판수의 점복(占卜)이 극적 반전의 모티브로 설정돼 있다. 판수가 전라도 남원 사또의 수청을 거부해 고초를 겪는 춘향을 위해 육효점(六爻占)을 쳐본 결과, 춘향의 낭군인 이몽룡이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함으로써 소설의 대반전을 암시한 것이다.
‘춘향전’뿐만 아니다. 고전소설 ‘홍길동전’ ‘장끼전’ 등에도 ‘주역’의 팔괘(八卦)를 이용해 미래를 점치는 행위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등장한다. 고전 소설의 무대인 조선 시대에는 주역 괘로 길흉을 점치는 행위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말해준다.
‘주역’ 괘를 이용한 점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 역술계에는 개인 운의 흐름을 거시적으로 파악하는 사주명리학과 함께 단기적인 사안을 살피는 육효점을 참고하는 역술인들이 적지 않다. 육효점은 미시적인 운세나 현안의 길흉을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도 매년 정초가 되면 한 해의 국운을 짚어본 육효점이 흥밋거리로 등장하곤 한다. 올해 정유년은 초반에서는 어렵다가 하반기에 평안하다는 ‘초난후태(初難後泰)’라는 어느 역술인의 육효점 결과가 나왔다고 했던가.
기자 출신의 육효점 고수
육효점은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상에서 자신의 미래 예측에 유용하게 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언론인 출신의 노응근 씨(59)가 그런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전문 역술인이 아니면서도 육효점의 고수로 역학계에도 소문났다.
그는 경향신문사에서 사회부·경제부 기자, 산업부장, 경제에디터, 논설위원 등으로 30여 년간 일하다 2014년 정년퇴직했다. 기자 시절 후배들 사이에서 육효점을 잘 본다고 소문나 ‘육효 도사’라는 별명까지 들었다. 그에 대한 소문은 같은 언론계에 종사하는 기자의 귀에도 들릴 정도였다. 그를 만나 어수선한 우리나라의 운세부터 물어보았다.
”굳이 육효점을 쳐보지 않아도 국내 정치와 경제 상황이 녹록지 않음을 누구나 알 수 있지 않은가. 점이라는 건 불확실한 상황에서 판단이 잘 서지 않아 혼란스러울 때, 무언가 간절히 알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런 기운에 응해서 괘를 뽑고 해석하는 행위다.“
그는 뻔한 사실을 가지고 왜 굳이 묻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육효점은 ‘심심풀이 땅콩’용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는 길을 잃었을 때 방향 감각을 되찾게 해주는 유용한 나침반이라는 것이다.
물론 역학계에는 여러 종류의 나침반이 있다. 사람의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를 기반으로 하는 사주명리학, 타고난 얼굴 생김새를 바탕으로 하는 관상학, 제갈공명이 즐겨 보았다는 기문둔갑, 하늘의 별을 기반으로 하는 점성학, 무당이 의지하는 신탁(神託) 등 다양한 나침반이 있다. 노응근 씨는 그중 주역 8괘를 기반으로 하는 육효점을 자신의 나침반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는 육효점의 장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육효점은 사주명리학 등 여러 역학 점에 비해 이론이 복잡하지 않다. 누구나 간단한 규칙을 습득하면 육효점을 칠 수 있다. 이를 테면 궁금한 사안이 생겼을 경우 주사위나 산대 등의 도구를 사용해 ‘주역’의 기본 8괘(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곤(坤)) 중 두 개를 임의로 선택한다. 임의로 추출한 두 개를 위(상괘)·아래(하괘)로 배치하면 모두 64개의 괘가 조합된다(8×8=64). 그리고 3개의 효(爻)로 구성된 기본 8괘가 위아래로 배치되면 6개의 효가 생기므로 육효라고 한다. 전체 64개 괘 중 해당하는 괘의 성격과 특징 등을 풀이한 육효 이론서 등을 참조해 궁금한 사항을 해석하면 된다. 물론 괘를 상황에 맞게 얼마나 잘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고수(高手)와 하수(下手)로 구분되긴 한다.“
그는 또 육효점은 하나의 특정 사안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는 매우 뛰어난 적중률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신문사에서 근무할 당시 후배들이 결혼·승진·합격 등 특정 사안에 대해 물어올 때마다 육효점으로 해석해서 풀어주곤 했는데, 나중에 신통하다는 얘기가 들려왔다고 한다.
동양학은 스승을 잘 만나야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노 씨가 처음부터 역학계에 발을 들여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와 육효점과의 인연이 궁금했다.
”1998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내가 몸담았던 언론사에서 구조조정이 실시됐다. 그때 언론인으로서 살아온 삶에 대한 회의가 생기면서 1년간 휴직을 신청했다. 당시 역술에 취미를 붙인 지인이 답답해하던 내게도 역학 공부를 권유했다. 그래서 소개 받은 사람이 육효학의 대가로 알려진 신산(神算) 김용연 선생이다. 그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육효학을 공부하게 됐다.“
그는 스스로 철학적, 종교적 성향이 강한 편이라고 밝혔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76학번인 그는 학창시절 불교철학과 명상 수련에 관심이 많았고 직접 수행도 해보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동양의 역철학에도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는 것.
그는 육효학에 입문한 지 3년이 지나면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해 스승과 함께 책을 펴내기도 했다. 2001년에 출간된 ‘신산육효-이것이 귀신도 곡하는 점술이다’는 국내 육효 연구의 새 지평을 여는 데 이바지하였고, 역학계에 큰 영향을 준 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동양 역학계에서는 스승을 잘 만나는 것이 제일 큰 복이라는 얘기가 있다. 귀신처럼 계산(예측)을 잘한다고 해서 ‘신산’이라는 호가 붙은 그의 스승은 어떤 사람일까.
”신산 김용연 선생님은 10대부터 기인(奇人) 술사(術士)를 만나 역학에 입문하여 50년 동안 각종 역서(易書)를 깊이 공부해온 분이다. 처음 만났을 때 다짜고짜 내 한자 이름을 묻더니 육효로 풀어보면서 ‘관(官)이 부러졌구먼’ 하고 말했다. 내가 휴직을 한 상태고 직장까지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여서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내심 ‘역학이란 게 이런 것인가’ 하고 충격을 받은 뒤 그날부터 바로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다. 스승한테 육효학을 배운 뒤 독립해 육효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는 역술가들도 국내에 한둘이 아니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육효학 외에도 성명학, 사주명리학 등 다양한 역학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가 독자적으로 ‘좋은 이름의 비밀’이라는 단행본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 책은 시중에 나와 있는 작명 이론을 거의 다 모아 소개하는 ‘성명학 교과서’ 같은 책이면서도, 각각의 성명학 이론에 대한 저자 특유의 날카로운 비판도 싣고 있다. 그는 성명학 서적을 낸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몇 해 전 그의 아내가 ”아이 이름이 안 좋다고 하니 바꿔야 한다“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아이의 한자 이름을 분파(分破)하니 매우 흉하게 나왔다는 거다. 많고 많은 성명학 이론 중 곁가지 이론에 불과한 ‘분파 성명학’ 이론을 보고 불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명학의 이론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는 것이다. 그는 성명학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이름이 기운(에너지)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좋은 기운을 가진 이름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오히려 성명학이 가진 긍정적인 의미까지 훼손되고 있다. 나는 개명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거나 뜻이 흉한 글자가 들어 있는 이름이 아니라면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에 의문을 갖지 말라. 작명소에는 아예 가지 말고, 철학관에 가서도 이름에 대해서 묻지 말라. 그러다 우연히 이름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듣거나, 스스로가 이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머뭇거리지 말고 개명하라. 그리고 개명 후 다시는 의심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새누리당은 ‘샌-우리-당’으로 이미 깨짐을 암시했다
그는 이름이란 스스로 좋다고 생각하면 좋은 이름이고, 안 좋은 이름이란 ‘의심’이 드는 순간부터 나쁜 이름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당명을 개정한 자유한국당(이전 새누리당)을 사례로 들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원래 새누리당은 새로운 누리(세상)라는 뜻으로 지은 당명이지만, 된발음을 하거나 까칠한 발음을 하는 이들에게는 ‘샌 우리 당’으로 발성되기 쉽다. ‘샌’은 물질이 틈이나 구명으로 빠져 나온다는 의미의 ‘새다’라는 뜻이고, ‘우리’는 동물 등이 거처하는 지극히 작은 공간을 말한다. 나의 스승이 새누리당 이름을 보고 일찌감치 해석한 것인데, 실제로 새누리당 의원 일부가 빠져나오는 등 당이 갈라지고 결국 당명마저 바꾸게 되지 않았는가. 이처럼 이름에는 예시적인 것이 암시돼 있으므로 사람이나 단체가 이름을 지을 때는 잘 지을 필요가 있다.“
그는 언론계에서 은퇴한 후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다. ‘공감 철학원’이라는 사무 공간을 마련해 육효점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육효학 강의를 하고 있고, 지난해 성명학 책을 낸 후부터는 성명학 강의까지 요청받고 있다는 것. 그는 육효학이 단순히 점치는 행위만이 아니라, 자기 수양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육효점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나 스스로를 위한 점을 칠 때는 빗나가는 것이 많았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자기 점을 칠 때 자신에게 유리한 점괘가 나오기를 바라는 사욕(私慾)이 개입하면 점괘가 잘 맞지 않았다. 무념무상한 상태에서 점을 칠 때만 점기(占幾)가 응해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또 그렇게 점을 치다보니 마음을 비우는 습관을 자연스럽게 들이게 됐다. 자신의 욕심을 비우는 것이야말로 모든 도가(道家)에서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마치 무위자연을 논하는 도학자(道學者) 같은 말이다. 그는 젊었을 때는 세상은 자기 의지와 노력에 의해서 개척해 나가는 무대로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부터 세상은 자기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으며, 더 나이가 들어 육효학을 접한 뒤부터는 인생은 운명(運命)이라는 거대한 수레바퀴 위에서 함께 굴러가는 존재라고 느끼게 됐다고 한다. 그러나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과 그렇지 못한 삶의 결과는 달리 나타나기 때문에, 인간의 의지와 노력은 여전히 아름답고 귀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노 씨는 마지막으로 점복이라는 술수학을 미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척하는 것 또한 교만이라고 주장했다. 술수학에서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세상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보다 겸손해지고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지혜의 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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