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읽어도 좋은 책, 놓쳐서 아까운 책, 읽을 때마다 다른 울림을 주는 책이 있습니다. 문화연구자 이원석 씨와 ‘홍대 마녀’로 불리는 인디 가수 오지은 씨가 자신이 아끼는 책을 번갈아 소개합니다. 첫 책은 미국 문화사학자 칼 쇼르스케(1915∼2015)의 ‘세기말 빈’(글 항아리)입니다. 》
정신분석가 프로이트,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음악가 쇤베르크,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이들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동일한 시공간을 살았다는 것이다. 흔히 ‘세기말 빈’이라 부른다. 창조적 반항아들이 득실댔던 시절이며 공간이다.
19세기 후반 오스트리아 빈이라는 독특한 시공간은 언제나 나를 사로잡아왔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처럼 과거의 시공간으로 회귀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택하고 싶은 곳이다. 그러나 시간여행을 떠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집어 드는 책이 바로 칼 쇼르스케의 ‘세기말 빈’이다.
원제는 ‘Fin-de-Si‘ecle Vienna’. Fin-de-Si’ecle는 세기말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지만 저자는 미국인이다(서구 지식인들도 있는 척하고 싶을 때 외국어를 쓴다). 100년을 꽉 채워 살았던 저자 쇼르스케는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오랫동안 문화사를 가르쳤다.
쇼르스케는 니체의 등장 이후 이성과 역사 발전에 대한 서구의 믿음이 흔들리는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대상으로서 19세기 후반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의 빈을 선택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근대 서구의 황혼에 빈의 엘리트 집단은 문화적 혁신으로 반응했다. 이는 합리성을 신뢰하고 강고한 기율로 살아가던 아버지 세대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러한 혁신의 이면에는 카페와 살롱이 있다. 당시 빈의 시민들은 주거공간이 좁아서 잠잘 때 외에는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서로 분야를 막론하고 교류했다. 그들은 숱한 환담 속에서 무의식을 발견하고(프로이트), 관능에 눈을 뜨고(클림트), 언어의 본질에 대해 새롭게 주목한(비트겐슈타인) 것이다.
매사에 혁신을 부르짖고, 경제도 창조를 강조하는 시대가 아닌가. 창조와 혁신의 비결이 궁금하다면 우선 세기말 빈부터 연구할 일이다. 교양과 문화, 역사에 관심 있는 이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매료됐거나 미래를 혁신하길 원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솔직히 조금 어렵기는 하다. 저자가 거친 눈발 속에서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가듯이 조심스레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도시를 재구성한 노작이기 때문이다. 음악과 미술, 정치와 건축, 정신분석학 등이 차례로 우리의 뇌리를 강타한다. 해서 강제로 우리의 교양을 끌어올린다. 그러나 자고로 교양을 쌓으려면 ‘지적 마조히스트’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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