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을 읽으면 성공한다’는 신화가 한국 사회에 번진 지 10년이 넘었다. ‘고전은 천재가 썼다. 고전을 열심히 읽으면 우리도 천재가 된다. 고전 탐독은 성공의 비결이자 엘리트의 자녀 교육법이다.’ 이 주장에 감화받아 한동안 고전 열풍이 불었으나 그 결실은 초라하다. 인문 고전을 10년 읽은 결과가 궁금하다면 전국을 떠도는 시간강사들을 보라.
실용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고전은 선택할 수 없는 한가로운 도락(道樂)의 정점으로 쓸모가 없다. 고전 탐독은 결코 성공의 비결이 아니다. 고전을 열독한다고 해서 이제껏 없던 ‘여친’이 갑자기 튀어나오거나 옛 ‘남친’이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는다.
이탈리아 문학 연구자이며 철학자인 누치오 오르디네는 실용성을 강조하는 우리 시대에 고전과 인문학이 ‘쓸모없는 것’임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고전을 읽고 인문학을 배워야 할 이유를 ‘쓸모없는 것들의 쓸모 있음’(컬처그라퍼)이라는 책에서 제시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야만의 시대는 ‘쓸모없는 지식의 유용성’이 ‘지배적인 유용성’과 근본적으로 대립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책 구성 자체가 지배적인 유용성과는 거리가 멀다. 오르디네가 “오랫동안 가르치고 연구하면서 기록해 두었던 생각과 인용문들을” 조각조각 흐트러진 모습 그대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짤막한 단편 속에서 수많은 고전과 현자의 가르침이 인용되고, 이를 발판 삼아 오르디네의 사색이 전개된다. 눈 밝은 독자라면 서장(‘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에 대한 선언’)만으로도 저자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핵심만 추려내는 실용적 독서법으로는 이 소품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가 없다.
오르디네는 ‘쓸모없음의 유용함과 유용함의 쓸모없음’을 다양한 변주로 들려주며 독자의 영혼을 깨운다. 쓸모없는 지식이 겨냥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삶과 존재 자체다. 뭇 스승들과 오르디네의 가르침을 제대로 새겨듣고 고전과 인문학으로부터 더 많은 배움을 얻기 위해서는 삶의 여백을 만들어야 한다. “쓸모없는 것에 할애할 시간이 없는 현대인은 영혼 없는 기계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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