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20대는 방황으로 가득했다. 참스승을 찾아 온 청춘을 소비했다. 원수를 갚기 위해 무림의 고수를 찾아 나서던 것과 비슷하지 싶다.
‘스승 찾아 삼만리’의 여정은 좌절로 귀결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승에 대한 내 기준은 지나치게 높았다. 당시 나는 지덕체가 합일된 완전체의 스승을 갈구했다. 그런 강박 때문에 스승 찾기는 더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나의 스승들은 늘 내 기대치를 벗어난 이들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대하지 않던 방식으로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니까 사실, 스승에게서 무엇을 어떻게 배워야 할지도 잘 몰랐던 셈이다. 그때 내 손에 들어왔다면 좋았을 책이 하나 있다. 일본의 지식인이자 무도가인 우치다 다쓰루의 ‘스승은 있다’.
시간강사로서 학생을 만날 때 겪었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준 것이 그가 쓴 ‘하류 지향’이었다. 학생들이 강의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설명에 나는 치유받았다. 그의 ‘스승은 있다’는 스승에 대한 생각을 바로 세우도록 도와주었다.
159쪽에 불과한 이 얇은 책자는 원래 개념에 대한 성찰을 독려하는 입문서 시리즈(지쿠마 프라이머 신서) 중 하나다. 우치다가 여기에서 내놓는 스승상은 스승에 대한 우리의 착각을 부순다. 그는 학생의 생각과 기대치를 넘어서는 사람이 참된 스승이라고 말한다.
스승은 제자의 사유와 한계를 넘어선다. 외려 내가 예상치 못했던 내 지평과 가능성을 확장시켜 주는 게 스승의 몫이다. 참된 스승은 지식을 늘려주는 것을 넘어서 존재 자체를 바꿔버린다.
나는 이 얇은 책을 펼쳐들고 ‘왜 이제야 만났나’라고 탄식했다. 20대의 나는 내 기준에서 완벽한 스승을 찾았지만 정작 필요했던 것은 내 부족함을 깨우쳐 주는 이를 스승으로 모시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 곁에 이미 존재했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우치다는 스승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스승을 통해서 배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준다. 혹시 참된 스승을 찾아 헤매는 이가 있다면, 먼저 ‘스승은 있다’를 읽기 위한 시간을 비우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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