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학교에서 창문 너머 텅 빈 운동장을 보곤 했다. 사람이 없는 운동장에는 묘한 서늘함이 있었다. 운동장에서는 그 느낌이 나지 않았다. 창으로 바라본 운동장만이 특별했다.
반지하 집에 살 때도 창을 보았다. 밤과 낮이 바뀌어 시간 개념도 흐릿하던 시절 그 빛으로 또 하루가 간다는 사실을 느꼈다. 가끔 창문 밖으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의 발소리,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말소리,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를 들으면 문은 굳게 잠그고 있었어도 세상과 잠시 이어질 수 있었다.
고시원에 살던 시절, 창문이 있는 방은 특별히 비쌌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당시 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부글거리는 에너지가 작은 고시원 바닥에 무겁게 뭉쳐 있었다. 나는 창문으로 몰래 세상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가끔은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지금도 창을 본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누우면 하늘이 보인다. 하늘색이 바뀌는 것을 볼 때가 가장 사치스러운 순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창을 보면 달과 눈이 마주친다. 새벽 시간은 느리게 가도 달은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사 온 첫날 밤 창문을 보았을 때도 그 달이 보였다. 그 순간 새집이 좋아졌다.
가장 아름다웠던 창은 뮌헨에서 보았다. 중심가 호텔 다락방을 잡았다. 방문을 열자 정면에 창이 있었다. 프레임 너머 반절은 뮌헨의 구시가지, 반절은 파란 하늘이었다. 모든 일정을 접고 창문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컵라면을 먹으며 뮌헨의 거리가 색을 바꾸는 모습을 보았다.
‘창을 순례하다’(사진)는 세계의 아름다운 창을 모아둔 책이다. 표지만 보고 바로 구매를 했다. 도쿄공대 한 연구실 교수와 학생들이 창을 연구하려고 세계여행을 했다.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에 따라 창의 모양도 변했다. 다 읽고 보니 창문 너머와 안쪽, 그리고 창을 보는 사람과 그 시간에 대한 책이었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아도 창문으로 보는 세상은 완벽하다. 천국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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