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수(置數·실력 차에 따라 맞바둑 또는 접바둑 등을 협의하는 것)를 정하는 게 역시 어려웠다. ‘타짜’가 아닌 이상 바둑 치수는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기원 공인 아마 5단. 약간의 탐색전 끝에 맞바둑을 두기로 하고 돌을 가렸다. 기자가 흑을 잡게 됐다. 18일 동아일보 광화문 사옥 노조사무실에서 조상호 나남출판 회장(66)과 기자의 대국이 시작됐다.》
●나의 한수○
모르면 손 빼라 어려운 상황을 그냥 모르는 척하라는 소리가 아니다. 앞이 전혀 안 보이는 상황에선 무작정 나아가지 말고 한 걸음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자중자애하면서 유심히 지켜보면 안개 걷히듯 해결책이 떠오를 수 있다.
국면은 흑이 주도했으나 상대는 불리한 형세(기자의 판단)에서도 단번에 무너지는 법 없이 끈질기게 추격해 왔다. 서로 잘 아는 처지라 수담과 함께 입담까지 나눴다. 눈대중으로 형세가 만만치 않다고 여겨질 무렵, 좌하 귀 백 집에서 흑이 수를 내며 바둑이 끝났다. 상대는 아쉬운 듯 좌하 변화만 10분 넘게 복기한 뒤에야 기자를 놔주었다.
38년간 출판사를 운영해 온 조 회장에게 원하는 다른 직함을 고르라고 하면 그는 서슴없이 한국기원 이사를 꼽는다. 14년째 연임을 거듭하는 그에게 바둑은 출판만큼이나 많은 시간을 들이는 분야다.
바둑은 대학 재수할 때 배웠다. 동아일보 국수전 등 신문 기보를 보며 실력을 키운 덕인지 금세 3급까지 올라갔다. 대학생 때 학생운동 하다가 박정희 정권이 위수령을 내리자 피신하기 위해 기원으로 숨었다.
“돈이 없어 매일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짜장면 내기 등 ‘생계형 바둑’을 두게 됐는데, 그때처럼 바둑이 짜릿했던 적이 없었어요. 실력도 많이 늘었고요.”
이후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그는 ‘바둑 접대’를 했다. 출판사를 찾아오는 작가와 교수들에게 커피 대접하듯 바둑을 둔 것이다.
“바둑은 손으로 하는 대화, 수담(手談)이잖아요. 입으로 하는 대화보다 훨씬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요. 바둑 한판 두고 나면 상대와 마치 알몸으로 목욕한 것처럼 친밀해지죠. 그럼 출판 얘기도 술술 풀렸죠. 가끔 바둑 못 두는 사람이 오면 ‘여태 바둑도 안 배우고 뭐 했나’라고 질책성 말도 날리고….”
나남출판이 2000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는 데는 분명 바둑도 한몫했을 것이다. 2010년에는 6개월 휴직 파문 이후 복귀한 이세돌 9단과 창하오 9단의 중국 상하이 엑스포 기념 친선 대국을 주선하기도 했다. 조 회장의 바둑 일화를 다 들으려면 2박 3일도 부족해 보였다.
그에게 ‘바둑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바둑의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였다. “결국 반상에서 혼자 해결해야 하는 거잖아요. 스스로 이겨 내든 아니면 제풀에 꺾이든. 훈수꾼보다 대국자가 더 수를 정확히 본다는 말이 있어요. 책임감 때문이죠. 출판사 하면서 숱한 과제에 부닥치고 유혹이 생길 때마다 바둑을 떠올리며 자중자애하고 이겨 내는 마음을 되새겨 왔어요.”
그는 8년 전 경기 포천시 신북면에 20만 평의 수목원을 조성해 요즘 나무 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노년에 갑자기 시작한 일이 아니라 30여 년 전부터 충남 태안, 포천 광릉 등에서 나무를 심어 온 것을 이곳으로 집결시킨 것이다.
“뭐 하나라도 목전에 닥쳐 갑자기 하려고 하면 되나요. 나무 심기나 바둑 모두 참고 기다리는 데 묘미가 있죠. 사전 공작 없이 상대 대마(大馬) 잡으러 가면 백전백패예요. 참고 기다리는 과정이 지나면 꽃이 피고 새가 울죠.”
아마 사내 호출이 없었다면 그는 분명 설욕전을 펼치려고 했을 것이다. 그가 사무실로 내려가는 기자에게 기분 좋은 얼굴로 하는 말을 듣고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결 이후 좋아진 점이 뭔지 알아요. 바둑 두는 할아버지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겁니다. 여우 같은 며느리들이 애들 바둑 가르쳐 달라고 성화래요. 나도 다섯 살 손자 바둑 가르치고 있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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