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우유 안 드시니… 고기라도 드릴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3일 03시 00분


우유 먹을 아이들은 줄어드는데… 정부는 구제역 뒤 젖소 사육 장려
창고엔 가루우유가 산더미처럼… 결국 5400마리 도축 극약처방

우유가 넘쳐… 젖소의 눈물

《 사람 한 명 없는 도축장에선 수백 개의 허연 입김이 파란 하늘로 피어올랐다. 빛을 반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빛나고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구슬처럼 둥글고 커다란 소들의 눈이었다. 우유 생산량이 많아 사랑받던 젖소 ‘순둥이’도 두 눈을 껌벅이며 도축장 안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유가 넘쳐 나 소를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해 말 기준 국산 우유 재고량은 2013년 말(9만2000여 t)의 갑절을 넘어선 23만2000여 t. 결국 사람들은 젖소 5400마리를 도축해 우유 생산량을 줄이기로 했다. 》  
젖소 ‘순둥이’를 태운 작은 트럭이 지난달 27일 오전 경기 부천시의 한 도축장에 들어섰다. 지난해 말 낙농업계와 우유업계는 우유
 과잉생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젖소 5400마리를 도축하기로 했다. 그중 한 마리가 순둥이다. 부천=김성모 기자 
mo@donga.com
젖소 ‘순둥이’를 태운 작은 트럭이 지난달 27일 오전 경기 부천시의 한 도축장에 들어섰다. 지난해 말 낙농업계와 우유업계는 우유 과잉생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젖소 5400마리를 도축하기로 했다. 그중 한 마리가 순둥이다. 부천=김성모 기자 mo@donga.com
1t짜리 작은 트럭에 타고 있던 젖소 ‘순둥이’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기자를 바라보는 것이 꼭 사람 같았다. 녀석의 크고 깊은 눈망울에 새파랗게 차가운 겨울 하늘이 떠올라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담아가려는 듯했다.

기계적으로 이뤄지는 죽음. 도축장 줄에 선 소들 가운데 젖소는 순둥이뿐이었다. 굵은 끈이 순둥이의 얼굴에 헐겁게 묶여 있었지만 도망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눈만 깜빡일 뿐이었다.

순둥이는 원래 식용인 육우가 아니다. 인간들이 실리(實利)를 찾기 위해 내린 결정 때문에 다른 젖소들만큼 살지 못하고 도축장에 왔다. ‘젖’이 넘치자 사람들은 결국 ‘소’를 잡기로 했다.

○ 만 세 살 겨울에 저세상으로

지난달 27일 오전 9시 경기 부천시 오정구 송내대로의 농협중앙회부천축산물 공판장. 자체 도축장을 갖춘 이곳 주차장을 택시 두 대를 이어놓은 길이의 5t 트럭 30여 대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죽음에도 순서가 있었다. 트럭들은 순서를 기다렸다가 도축장 건물 입구에 꽁지를 가져다댔다.

그 와중에 범퍼 곳곳에 녹이 슨 1t 트럭 ‘포터’가 주차장에 들어섰다. 좁은 짐칸에는 젖소 순둥이가 타고 있었다. 700kg의 덩치가 제자리걸음만 해도 트럭은 좌우로 출렁거렸다. 순둥이의 엉덩이에는 뒤섞인 진흙과 오물이 말라붙어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하지만 농구공만 한 젖은 솜사탕처럼 희고 고왔다.

‘소는 죽는 날을 안다’고 했던가. 도축장 근처에선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한 놈이 울기 시작하면 다른 놈들도 따라 울었다. 시골에서 듣던 정겨운 ‘음∼메’ 소리와는 사뭇 달랐다. 소들은 악다구니를 쓰듯 서럽게 흐느꼈다.

순둥이는 눈만 껌뻑이다 도축장 직원의 “이랴” 소리와 함께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평균 수명의 반도 살지 못한, 만 세 살의 겨울에 저세상으로 갔다.

35년간 소를 키워 온 순둥이 주인은 “순해서 순둥이란 이름을 지어 줬다”고 했다. “젖이 많이 나오는 좋은 소”였다던 그는 “자식 보내는 심정이지 어쩌겠나”라고 말했다.

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는 기자의 차를 순둥이의 잔상이 뒤따랐다. 왠지 모를 죄책감도 함께했다. 길을 헤매기도 하면서 두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충남 천안시의 거대한 물류 창고(6280m²·약 1900평). 학교 운동장만 한 주차장에는 차량이 한 대도 없었다. 사람이 오간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창고 안에는 시멘트 포대와 비슷한 것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지방을 제거한 우유를 가루로 만든 탈지분유였다. 잘 상해버리는 우유는 이렇게 가루로 만들어야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그래 봐야 기한이 2년 이하이지만.

창고에 쌓여 있는 20kg짜리 분유 포대는 무려 15만 개나 됐다. 1L 우유 2750만 병이 쌓여 있는 셈이었다.

공장을 보여준 유가공 업체 관계자는 “우리 창고도 아닌데 임차료, 운반비를 주면서 왜 쌓아 뒀겠냐, 안 팔려서 쌓아 뒀지”라고 말하며 한숨을 몰아 쉬었다. “입사하고 20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어요. 1년 전만 해도 텅 빈 창고였는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첫 새끼를 낳은 직후 한 달 동안 70kg이나 짜냈던 순둥이의 젖도 산더미처럼 쌓인 분유 더미 안에 들어 있지 않을까 싶었다.

○ 내미는 컵은 줄고, 따라야 할 우유는 늘고

요즘엔 우유가 남아돈다. 엄마들이 자식 ‘키’ 키우려고 억지로 우유를 먹이는 것은 이미 옛날이야기가 됐다. 내미는 컵(수요)은 점점 줄어드는데 그 컵에 따라야 할 우유(공급)는 계속 늘어나는 꼴이다.

사람들은 우유 대신 ‘아메리카노’나 ‘건강음료’를 찾는다. 2013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우유 소비량은 33.5kg(농림축산식품부)이었다. 유럽인들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계속해서 줄고 있다.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우유를 먹고 자라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슬픈 사실에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신생아는 10년 전보다 10% 이상 적은 43만6455명이었다.

반면 최근 몇 년 사이 젖소 수는 증가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에 있는 젖소는 경기 평택시 인구와 비슷한 43만1000마리에 이른다. 2013년 말보다 7000마리가 더 늘었다. 농민들은 정부에 화살을 돌린다. 한 농장주는 “2010년 말부터 2011년 초까지 구제역이 유행할 때는 (정부가) 젖을 짤 젖소가 모자란다며 소를 더 많이 키우라고 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았던 지난해 날씨도 젖소들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됐다. 지난해에는 특히나 여름이 서늘하고 겨울이 따뜻해 젖소들의 평균 우유 생산량이 늘었다. 젖소의 고향은 기후가 서늘한 유럽이다. 너무 덥거나 추우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10∼20도인 적정 사육온도에서는 우유가 평소보다 더 많이 나온다.

문제는 우유 소비량이 늘어난다고, 재고가 넘쳐난다고 해서 가격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복잡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원유 가격은 농가와 유가공 업체가 협상을 해 결정한다. 농가의 생산원가(설비와 사료 값 등)에 적정 이윤을 더하는 식으로 정해진다.

서건호 건국대 수의학과 교수는 “궁극적으론 소비자들이 많이 마시는 수밖에 없다. 필요하다면 정부가 농가에 보조금을 주고 가격을 낮추는 방법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낙농업계과 우유업계는 결국 우유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 지난해 12월 젖소 5400마리를 도축하는 ‘극약처방’을 내놨다. 그 때문에 세 살짜리 소 순둥이의 육신은 낯선 도시의 정육점 진열대에, 빨간색 조명을 받으며 놓이게 됐다.

부천·천안=김성모 기자 mo@donga.com
#우유#고기#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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