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자녀 성적순?… “내 삶은 뭐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6일 03시 00분


[창간 95주년][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2>40대 엄마가 위험하다
30∼50대 엄마 50명 인터뷰

《 한국의 엄마들에겐 40대도 질풍노도의 시기다. 신체적으로 한풀 꺾이는 나이인 데다 자녀 교육 문제, 남편이 조기 퇴직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노부모 부양까지 온갖 짐을 짊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맞벌이를 하는 40대 여성들의 경우 더욱 큰 성과를 요구하는 직장 스트레스까지 겹쳐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40대 엄마들이 털어놓았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은….” 》

입시설명회에 몰린 엄마들 고교 입시설명회장을 찾은 학부모들.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난 엄마들은 자녀의 교육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다. 40대 엄마들은 “입시 문제는 내가 통제할 수도 없고, 그 결과에 쉽게 승복하기도 어려워 더욱 불안하고 부담이 된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입시설명회에 몰린 엄마들 고교 입시설명회장을 찾은 학부모들.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난 엄마들은 자녀의 교육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다. 40대 엄마들은 “입시 문제는 내가 통제할 수도 없고, 그 결과에 쉽게 승복하기도 어려워 더욱 불안하고 부담이 된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대 땐 모든 게 서툴고 두려웠어요. 30대에 결혼, 임신, 출산을 겪으며 힘들기도 했지만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런데 40대는 두렵네요. 더이상 젊지도 않고 신경 써서 꾸며 봐도 아줌마일 뿐…. 40대의 삶은 어떨까요?”

맞벌이를 하며 8세 딸을 키우는 주부 A 씨(40)는 최근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 ‘82쿡’에 이런 질문을 올렸다. 동아일보 창간 95주년 기획 ‘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의 인터뷰에 응한 40대 엄마들이라면 이런 댓글을 달았을 것이다. “각오하세요. 40대가 고비예요.”

중산층 30∼50대 엄마 50명을 인터뷰한 결과 40대 엄마들의 행복도는 평균 6.5점(10점 만점)으로 30, 50대 엄마들보다 낮았다. ‘나는 몇 점짜리 엄마인가’라는 질문에도 가장 낮은 점수(6.0점)를 주었다. 이들은 대학입시와 경단녀(경력단절여성) 문제, 조기 퇴직으로 인한 경제적 불안감에 노부모 부양까지 엄마들의 모든 고민거리를 짊어지고 있었다.

○ 일과 아이 사이의 외줄타기

육아 단계를 지난 40대 엄마들의 관심사는 자녀 교육과 일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자녀의 성공’과 ‘몰두할 수 있는 일’을 1, 2순위로 꼽았다. 30대, 50대 엄마들과 달리 ‘부부관계’를 선택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애들이 고1, 고3이어서 온통 애들 성적 생각뿐이죠. 열심히 한 만큼, 실력만큼 대학 간다면 불만이 없을 텐데 요즘 대학입시는 로또 같아요. 대학 나와도 취업이 어렵다지만 그래도 대학마저 못 가면 더이상 패자부활전은 없는 사회잖아요.”(한모 씨·44·전업주부)

“육아와의 사투 끝에 경단녀가 됐어요. 아이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돌봄교실’에 보낸다고 하면 (아직 어리니 엄마가 돌봐야 한다며) 짐짓 걱정스럽게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럴 때면 폭발하려는 걸 꾹 참아야 하죠.”(유모 씨·43)

특히 40대 엄마 중에서도 맞벌이를 하는 경우 행복도(6.1점)와 자기 평가 점수(5.7점)는 매우 낮았다.

“내가 늙어가는 것, 아들 성적, 직장 스트레스까지 삼중고예요. 아이가 ‘밋밋한 대학’에 갔어요. 뒷바라지를 못했다는 자책감이 커요. 직장에서도 후배들에게 처지는 느낌이에요. 요즘 애들 스펙이 장난이 아니잖아요.”(강모 씨·45·공기업 직원)

“대학입시 전형이 수백 가지여서 엄마가 전략을 잘 짜야 애가 대학에 갈 수 있어요. 이건 양극화의 고착이고 직장맘들에겐 좌절감을 안기는 제도죠. 엄마 월수입이 700만 원 이하이면 직장 다니는 것보다 아이 키우는 게 낫다는 얘기도 해요. 이래서야 고학력 경단녀들이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을까요?”(김모 씨·41·회사원)

○ 노부모 부양에 늦둥이까지

40대 엄마들이 ‘나의 행복 조건’ 3순위로 꼽은 것은 가족의 건강이었다. 양가 부모가 병들어 걱정이고, 명예퇴직한 남편 대신 가장이 된 내 건강이 걱정이었다.

“시아버지는 요양원에 모셨어요. 친정어머니는 저를 포함해 세 딸이 돌아가면서 모시고요. 월 50만 원 요양원 비용과 양가 어머니 생활비까지 부담이 꽤 커요. 그거야 자식 된 도리라지만 속상한 건 시부모님과 갈등이 생기면 무조건 며느리 탓을 하는 문화예요. 웃어른이 잘못하는 경우도 많은데….”(강모 씨·49·교사)

“남편이 실직했어요. 퇴근 후 집에 오면 다른 일터에 출근한 듯 집안일과 애들 교육에 시달리죠. 나 혼자 살아보고 싶어요.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주인공 김혜자처럼 안식년을 가든가.”(장모 씨·41·회사원)

특히 만혼 풍조로 출산이 늦어지면서 육아 부담에 힘들어하는 40대도 있었다.

“나이 마흔에 아이를 얻은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다만 우리가 너무 빨리 건강을 잃게 되면 어쩌나 걱정됩니다.”(이모 씨·42·회사원)

82쿡에도 늦은 육아를 하는 엄마들의 고생담이 많이 올라온다. “요즘 교육정책도 빠르게 바뀌고 엄마들도 극성인데 늙은 엄마는 힘들어요.” “출산이 늦으니 친정 엄마에게 산후조리나 육아도움을 바랄 수 없어 서러워요.” “둘째가 첫아이랑 열두 살 차이인데 첫째가 자꾸 물어요. 아빠가 병들어 일 못하면 자기가 동생 공부시키고 장가보내야 하느냐고요.”

“어느 나라나 자녀가 사춘기일 때 엄마들은 가장 불행하다. 한국에선 자녀보다 엄마 쪽에서 분리불안을 느낀다. 아이를 떠나보내라. 나를 기쁘게 하는 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에 침잠해야 한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56)

“직장 여성들에게 40대는 자녀 양육의 부담이 크고 직장에서도 뭔가 보여줘야 하는 힘든 시기다. 아침이나 잠들기 전 잠깐이라도 오직 자기만을 위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은영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53·사회심리학 박사)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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