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운전자가 젊었을 때 감각만 믿고 운전대를 잡으면 어떨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수영처럼 몸으로 배운 기능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운전은 다른 활동에 비해 몸의 움직임도 적은 편이다. 심지어 장애가 있어도 보조 장치의 도움으로 운전을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지난달 20일 경북 상주시 교통안전교육센터. 기자는 직접 80세 노인이 되기로 했다. 근육과 관절 움직임을 제약하는 노인 체험 장비를 착용했다. 팔다리를 쉽게 구부릴 수 없었다. 허리 지지대를 착용하니 몸이 30도가량 굽었다. 노인성 질환인 백내장 증세를 구현한 안경을 쓰고 방음 스펀지로 귀를 막았다.
차량에 탑승하는 순간 자신감이 사라졌다. 가속 페달을 밟는 순간 두려움이 몰려왔다. 시야가 흐려 계기반의 눈금도 잘 보이지 않았다. 상체가 앞으로 쏠려 좌우 시야도 좁게 느껴졌다. “시속 80km를 유지하세요.” 무전이 계속 울렸지만 일정 속도를 유지하지 못했다. 곡선 주로에서는 핸들을 늦게 꺾어 코스를 이탈할 뻔했다. 실험을 주관한 교통안전공단 하승우 교육개발처 교수는 “시청각 능력이 감퇴하면서 속도와 균형 감각이 둔해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에 따르면 60대의 시력은 30, 40대보다 평균 20%,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시력은 이보다도 30%나 떨어진다.
쉬운 직선 코스에서도 실수를 연발했다. 시속 80km를 넘기자 도로 양쪽에 세워 둔 러버콘(고깔 모형) 16개 중 3개를 치고 지나갔다. 팔다리가 뻣뻣해 세밀한 핸들 조작이 어려웠다. 돌발 상황을 가정해 신호에 따라 급차로 변경을 시도했지만 10번 중 3번은 핸들을 제 때 꺾지 못했다.
사고를 내지 않으려면 서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속도를 시속 60km로 낮추자 장애물 충돌 없이 코스를 통과했다. 장비를 벗었을 때 25초가 걸린 S자 코스(20m)를 사고 없이 지나려면 40초가 걸렸다. ‘T자 코스’ 후진 주차는 천천히 시도해도 각도가 어긋나거나 차선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 교수는 “실제로 교육받으러 온 사업용 차량 운전자 중에는 200m 직선 주행조차 힘든 고령자가 있었다”며 “본인의 몸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고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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