使 더 뽑고, 勞 덜 받고… 기득권 동시 양보해 일자리 좀 나눠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6일 03시 00분


[청년에게 일자리를/청년이라 죄송합니다]3부 ‘노오력’의 귀환
使 추가인건비, 勞는 임금삭감 꺼려… 잡 셰어링 성공 세계적으로 드물어
임금동결-근로시간 단축-세제혜택… 네덜란드 노사정 대타협 모델 성공
低연봉-근로시간 짧은 일자리 늘려… 실업난 해소하려는 光州 모델 주목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취업한 친구들은 야근과 주말 근무 때문에 힘들어 죽겠답니다. 왜 사람을 더 뽑지 않는 거죠? 그 초과근무 시간이 결국은 누군가의 일자리 아닌가요?”(숙명여대 권혁민 씨)

특별취재팀이 만난 청년 중 상당수가 이렇게 물었다. 사회 초년병들은 정반대의 처지에서 비슷한 생각을 한다. “야근하는 것이 기본인 생활에 적응을 한 것 같아요. 취업에 성공했지만 새벽까지 일할 때는 회사 부품 같아요.” 2년 차 대기업 사원 김성철 씨(30)의 하소연이다. 주요 대학 취업상담센터에는 어렵게 취업하고도 1, 2년 후 회사를 그만두고 재취업 상담을 오는 졸업생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일은 많은 것 같은데 왜 일자리가 모자라는 걸까.

○ “일자리 나눈 사례, 정말 없나요?”

취재팀은 국내 기업을 찾아다니며 과거 사례부터 뒤졌다. 놀랍게도 8년 전인 2009년에 이미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이란 단어가 한국 사회에 유행처럼 번졌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근로자의 노동시간이나 임금을 줄이는 대신 신규 고용을 늘리는 정책이었다. ‘잡 셰어링’은 2009년 연말 뽑힌 10대 취업 뉴스 1등을 차지했을 정도다.

하지만 당시 잡 셰어링 사례로 언급된 기업 대부분은 일자리 나누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임금 삭감은 신입사원 위주로 이뤄졌고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인턴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구체적인 실패 요인을 알고 싶었지만 기업들은 명확히 밝히지 않아 답답하던 차에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가 답했다.

“국내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 나누기가 실행된 적이 없다고 보면 돼요. 어떻게 보면 담합 구조라 할 수 있는 노사 관계 때문이죠. 이를 바꾸고 사회적 책임을 느끼는 인식 전환이 있어야만 일자리 나누기가 시작될 겁니다.”

그렇다. 현재의 노동시장 참여자들이 일자리 나누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기업과 근로자의 속내에는 ‘담합’이 담겨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기업은 상시 정규직 고용을 최소화하고 싶어 한다. 상시 고용 인력을 늘리면 고정비가 커질뿐더러 이들이 일할 업무 공간과 생산 시설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경영 상황이 나빠지면 이 인력을 줄이는 문제 때문에 머리가 아파진다.

그러면 ‘저녁 있는 삶’을 외치는 근로자는? 한 대기업 정규직 사원은 조심스레 말한다. “솔직히 추가 근무 없이는 보수가 크게 줄어드는 직장이 많아요. 회사는 틈만 나면 사람을 줄이려 드는 믿을 수 없는 존재잖아요. 그러니 모두가 동료 근로자를 더 늘리기보다는 현재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는 데 신경을 쓸 수밖에 없죠.”

○ “유럽에선 대타협으로 일자리 나눴다던데…”

해외에서는 일자리 나누기에 성공했을까?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해 보니 결론은 뜻밖이었다. 일자리를 나눠서 청년 일자리를 늘린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어려웠다. “세계적으로도 일자리 나누기라고 하는 것은 경제위기 상황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합니다.”(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

어렵사리 유럽 사례 하나를 발견했다. 일명 독일 폴크스바겐의 ‘Auto 5000 프로젝트’. 해외로 나가려는 완성차 공장을 국내에 남기는 대신 5000마르크의 연봉으로 장기 실업자 5000명을 채용하겠다는 것이 핵심. 5000마르크는 폴크스바겐의 평균 임금보다 20%가량 낮은 것이다. 기업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실업률을 줄였다.

사회 전체의 성공 모델로는 1982년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이 눈에 띄었다. 청년실업률이 30%를 넘던 네덜란드에서 노조는 임금 동결,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 정부는 세제 혜택을 주는 노사정 대타협 모델이다. 임금 동결과 근로시간 단축, 시간제 고용 확대 등이 이뤄지면서 고용률이 75%까지 뛰었다.

○ “한국형 일자리 나누기 가능한가”

광주시가 주도하는 ‘광주형 일자리’는 기존 일자리보다 임금이 낮고 근로시간이 짧은 일자리를 만들어서 실업난을 해소하겠다는 개념이다. 연봉 4000만 원 정도의 일자리를 목표로 하고 있어 대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줄이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이 역시 쉽지 않았다. 광주에 공장이 있는 기아자동차 등이 참여해야 하지만 아직은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 인건비가 기존보다 낮다고 해도 해외보다는 인건비 부담이 큰 탓이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근로자가 기존의 임금을 고집하지 않으면서 일자리를 찾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낮은 임금을 기꺼이 받아들일 테니 이를 바탕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새로운 사회적 타협 모델을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취재를 해도 해도 명확한 해답을 얻지 못했지만 일자리 나누기는 청년 취업을 위해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점은 분명했다. “일자리 나누기 시도 중 성공한 소수의 사례는 결국 일자리에 대한 기득권층의 자제와 양보가 가장 큰 역할을 했어요. 한국 사회 역시 ‘양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박준식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

김도형 dodo@donga.com·주애진·위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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