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시즌2]술마신뒤 30~90분 체내 흡수율 최고
택시 운전사 사고 45분 지나 검사… 1, 2심 “운전시 농도 몰라” 무죄
대법 “처벌 기준치 넘어” 파기 환송
2014년 5월 10일 오후 9시 30분경 울산 중구의 한 식당 앞. 좁은 도로를 달리던 택시 한 대가 갑자기 주차된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야간에 지나는 차량이 많지 않아 교통사고가 거의 나지 않는 곳이다. 원인은 술이었다. 경력 12년의 택시운전사 반모 씨(51)가 반주로 막걸리 반병을 마신 것이다. 경찰은 오후 10시 15분경 반 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를 측정했다. 수치는 0.097%였다. 면허취소 기준(0.1%)에 가까웠다.
반 씨는 음주운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운전 당시 정확한 혈중 알코올 농도를 알 수 없다는 이유다. 통상 알코올이 몸에서 빠르게 흡수되는 시간을 음주 후 30분부터 90분까지로 본다. 이를 ‘혈중 알코올 농도 상승기’로 부른다. 반 씨의 사고는 술을 다 마시고 약 10분 후 발생했다. ‘아직 취하지 않은 상태’일 가능성이 있어 처벌 기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의 판단도 같았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반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울산지법 형사항소부에 돌려보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운전 종료에서 음주 측정까지 간격이 45분에 불과하고, 측정 수치도 0.097%로 처벌 기준인 0.05%를 크게 넘었다”며 “운전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를 0.05%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원심은 관련 법리를 오해했다”고 판단했다.
김인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부장은 “이번 판결은 음주운전 당시와 혈중 알코올 농도 상승기를 나누지 않고 전체 맥락에서 판단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며 “아직 법적 증거로 인정되지 않는 위드마크 공식에 대한 법원의 판단도 이젠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드마크 공식은 운전자가 마신 술의 양과 경과 시간, 몸무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알코올 농도를 도출하는 것이다. 경찰은 음주운전 며칠 후에도 이 공식을 사용해 운전자가 얼마나 취해 있었는지 추정한다. 또 위드마크 공식의 증거 능력을 높이기 위해 술자리 동석자 등의 진술과 폐쇄회로(CC)TV에 촬영된 음주 장면 등을 함께 활용한다.
하지만 법원은 위드마크 공식으로 얻은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5년 1월 충북 청주시에서 발생한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 대표적이다.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사서 귀가하던 피해자를 30대 운전자가 치어 숨지게 한 뒤 달아난 사건이다. 도주 19일 만에 붙잡힌 운전자는 “술을 마셨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위드마크 공식으로 추정한 혈중 알코올 농도는 1, 2심은 물론 대법원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줄고 있지만 재범률은 오히려 높아지는 게 특징”이라며 “음주운전 범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처벌하려는 사법적 의지가 있어야 음주운전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이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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