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청년 일자리 기획보도를 위해 2월부터 전국 47개 대학 재학생 및 졸업생, 고졸 직업훈련생, 고시촌 청년들 등 취준생 140여 명을 만나왔다. 이동거리만 1100km에 달한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은 취업을 포기했음에도 부모님께 ‘취업 준비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아가리 취준생’이 됐고, 스펙 쌓기에 목숨을 거는 ‘호모 스펙타쿠스(Homo-SPECtacus)’가 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24시간을 폭 50cm의 책상에서 하루 종일 지내는 ‘독서실 원시인’으로 살고 평생 ‘비계인’(비정규직·계약직·인턴)이 될지 우려한다. 취재팀은 한국 청년의 아픔을 담아내 화제가 된 청년 주인공들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달라져 있었다.
○ “탈출하고 싶은 청년이 탈춤 추도록”
“제 노력이 아직도 부족한 것 같아 불안해요”라고 말했던 취준생 송동준 씨(25·4월 11일자 A1면 참조). 그는 스펙에 집착하는 청년들을 뜻하는 ‘호모 스펙타쿠스’로 소개됐다. 보유한 자격증만 12개가 넘는데도 추가로 스펙을 준비하던 중 취재팀을 만났기 때문. 보도 후 그는 한동안 악플에 시달렸다. 그의 노력을 ‘부족한 학벌 탓’으로 비꼬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노력했고 대기업 최종면접을 앞두고 있다. 송 씨는 “악플에 상처 받았지만 잘 극복해서 좋은 기회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공시생 최동호 씨(34·4월 12일자 A1면)는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이었다. 그는 이달 24일 서울시 9급 공무원 시험을 무사히 마쳤다. 최 씨는 취재팀에 강하게 취재를 요청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고용 안정성이 높고…. 선호되는 건 알겠어요. 저도 준비 중이잖아요. 앞으로는 민간기업 또한 신분 보장과 채용 과정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도록 기사를 써주세요. 많은 청년이 공무원 준비에 매진하지 않고 각자의 재능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을 바랍니다.”
‘비계인’의 고단함을 보여준 이윤재 씨(25·4월 18일자 A1면)는 현재도 공공기관에서 시간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4월 말 계약이 끝난 후 계약이 연장됐고 사내의 격려와 응원도 많이 받고 있다. 그럼에도 이 씨는 자신의 이야기가 보도된 것을 계기로 비정규직 문제 외에도 너무나도 다양하고 복잡한 청년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저 역시 취재팀에 추가 취재를 요구합니다. (일자리 문제로) 세대 간 다툼보다는 서로를 이해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창구가 생기도록 기사를 써주세요. 한국이 싫어 탈출하고 싶은 청년들이 한국이 좋아 탈춤 출 수 있도록….”
취재팀이 만났던 취준생 140여 명 중 1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이들은 새 정부의 청년일자리 정책에 대해 ‘잘하고 있다’(32%)는 의견보다는 ‘보통이다’(50%)라고 답했다. 청년이 행복한 대한민국의 조건으로 ‘기득권의 배려와 양보’(33%)와 ‘세대 간 이해와 화합’(28%)을 꼽았다.
○ “양보다 질 높이는 일자리 정책”
서울대생임에도 자신을 ‘아가리 취준생’이라고 밝혀 화제가 된 정유철(가명·26·4월 10일자 A3면) 씨.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으로 살아온 그는 요즘 영어 공부에 몰두 중이다. “점점 취업이 힘들어지는데도 노력하고 고생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데… 제가 너무 속 편하게 산다고 생각했어요. 돌이킬 수 없는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어요.”
취업 준비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을 하소연했던 박지훈 씨(24·4월 13일자 A1면)는 여전히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다. 부모 지원 속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갓(God)백수(신이 내린 백수)’는 아니지만 보도 후 ‘고생했다’,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시민봉사단체 모임에도 나가는 용기를 얻었다.
인·적성 시험의 문제점을 지적한 취업준비생 조병은 씨(25·5월 4일자 A1면)는 현재 기업 2곳에 합격했다. 그는 보도 후 부모님과의 소통이 활발해지면서 심리적 안정을 얻었다고 했다. “취업이 힘들어도 집에서는 특별히 취업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기사를 보시고, 저는 물론 요즘 청년들의 취업난에 공감하게 됐어요. 이후 격려를 많이 받았어요.”
취재팀에 편지를 보내온 ‘꼼박족(꼼짝없이 석박사 공부)’ 방준원 씨(29·4월 21일자 A1면)는 지난달부터 한 달간 서울 대광고에서 교생 실습을 해왔다. 그는 “더 어린 청년들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꿀’ 같은 중소기업을 찾던 취준생 손경철 씨(27·5월 16일자 A1면)는 “여전히 중소기업 정보가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이 취직하면 멘토의 입장으로 취준생들을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직훈족(직업훈련을 받는 청년들) 민지애 씨(19·5월 12일자 A1면)도 취재팀에 과제를 던졌다.
“정부에서 일자리의 ‘양’을 늘리려고 합니다. 취준생이 원하는 건 일자리의 ‘질’이에요. 중소기업은 야근을 해도 수당을 안 주고 복지가 다릅니다. 그러니 대부분 취준생이 공무원 시험을 선택하고 대기업만 바라봅니다. 청년이 원하는 건 그냥 취업이 아니에요. 양질의 중소기업이 만들어지는 정책이 나오도록 계속 보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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