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30대에게 누가 제일 나쁠까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386세대다. 홍준표·김무성은 젊은 세대에게 논외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것만으로 콘크리트 치고 사다리 걷어차는 것이 나쁜 사람 아닐까.”
“유시민 씨는 정권이 교체되자 ‘어용 지식인’이 되겠다고 했다. 정의당 평당원이 무슨 생각으로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나. 사실은 전 장관이자 국회의원이면서 ‘작가’ 호칭을 고수하며 발언에 아무런 책임을 안 진다. 이것이 386세대의 논리다.”
“김어준은 음모론이 장난인 줄 안다. 아무 말이나 하면서 팩트체크가 된 것이냐고 물어보면 ‘판명 나기까진 음모론’이라 하고 ‘합리적 의심’이란 단어로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국민TV를 통해 방송된 팟캐스트 ‘까고있네’가 유시민, 김어준, 정봉주 등 이른바 진보진영 논객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방송 2회 만에 퇴출돼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TV는 2013년 자본·정치로부터 자유로운 독립 언론을 표방하며 ‘나는 꼼수다’의 김용민 씨가 참여해 만든 협동조합 언론사다. 국민TV 소속 PD·기자가 제작한 ‘까고있네’는 첫 방송으로 ‘천하제일 나쁜놈대회’를 주제로 했는데 386세대가 후보로 꼽혔다. 이들은 “유시민은 성폭력 문제 제기하는 당원에게는 ‘해일이 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을 거냐’고 면박 주더니 책을 팔 때는 ‘미시 파시즘을 경계해야 한다’며 조개 줍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고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러나 이 팟캐스트는 방송 2회 만에 국민TV 조합원들의 반발로 제작진이 징계를 받고 콘텐츠가 삭제됐다. ‘뚜렷한 근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 인사를 비방했다’는 이유였다. ‘까고있네’를 기획한 성지훈 기자는 “스스로 진보라 생각하지만 고정된 진영 논리는 깨고 싶었다”며 “개인보다 조직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의 태도 비판도 기획 의도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더 이상 좌우이념 진영논리나 ‘대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한다’ ‘공이 있으니 허물을 감싸라’는 집단논리가 통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1월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논란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20∼40대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졌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신 20∼40세대에게 요즘 가장 큰 화두는 ‘공정성’과 ‘개인의 권리’가 꼽힌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미국 베이비붐 세대가 개인의 출현을 알린 ‘더 미(The Me) 세대’였다면 밀레니얼 세대는 더 개인에 집중하는 ‘더 미미미(The Me Me Me) 세대’라고 규정했다. 타임은 이들이 ‘실용적 이상주의자’이자 ‘행동가’이며 사회의 낡은 시스템이 해체되는 흐름에 적응한 신인류라고 분석했다.
인터넷 독립저널 ‘DSLR’를 운영하는 김아현 씨(23)는 “거악이 사라지면 청년들도 행복할 거라는 막연한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며 “정치인이 어떤 이념 운동을 했다거나 누굴 변호했다는 등의 상징성은 공감하기 어렵다. 그가 어떤 정책 구상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386·베이비붐 세대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참았다면 ‘더 미미미 세대’는 현재와 자신이 중요하기에 과정이나 절차에서 개인의 권리가 희생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탈진영주의적 성향을 가진 청년 세대의 등장은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사회 다양화를 촉진시킬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구성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수 의견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 젊은 세대는 물론 여성, 6070세대 등 다양한 가치관을 담은 의견도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잘못 사과 없는 방송권력, 그들이 기득권” ▼
‘까고있네’는 국민TV가 젊은 조합원을 포섭하려 기획한 방송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준비해 기획안 결재도 받았지만 2회 만에 폐지됐다. 출연진(개친빠·마가린·김만석)은 유튜브·페이스북에서 자체 방송을 하고 있다. ‘일베 방송이냐’, ‘자유한국당 의원이나 까라’는 비판을 받았다는 권용득 씨(41·개친빠)와 최황 씨(34·마가린)를 11일 직접 만나봤다. 권 씨는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만화로 그렸고, 김만석 씨는 한때 정의당 당원이었을 정도로 진보 성향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비판에도 방송하는 이유는….
▽권용득=A를 부정한다고 B를 긍정하는 게 아니다. 방송 슬로건이 ‘너만 기분 나쁘라고 하는 방송’인데, 기분 나쁘게 듣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개인이 아닌 386세대나 진보를 대표하는 집단으로 여긴다. 진보·보수를 선악 이분법으로 이해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최황=민주주의는 끝없이 갈등하고 분열해야 한다. ‘한번 우리 편이면 영원한 우리 편’이라는 건 조폭 논리다. 정치적 스탠스가 다양한데 좌우만 구분하는 것은 고쳐야 한다.
―‘집단주의’를 적폐로 꼽았다.
▽권=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이기주의자가 남에게 해코지할 확률이 낮다’고 했다. IS(이슬람국가)는 신의 뜻을 내세우고, 이명박과 박근혜는 ‘나라를 위했다’고 한다. 386 세대는 ‘거악 척결을 위해 목소리를 합쳐야 한다’며 개인을 말살하니 똑같은 폭력으로 느껴진다.
―‘386 세대’나 ‘깨시민’이 기득권인가. ▽권=유시민, 김어준은 방송 권력이 됐다. 김어준은 정봉주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방송을 해놓고 징계도 안 받았다. 직접 사과도 제스처도 없었다. ▽최=국민TV에서 김용민의 방송을 준비했는데 정봉주가 서울시장 출마로 SBS AM ‘정봉주의 정치쇼’를 하차하자 김용민이 지상파로 가버렸다.
▽권=정봉주 김어준 김용민은 권력을 나눠 쓰며 서로 보호한다. ‘나꼼수’가 이명박에게 맞섰다지만 그들보다 성실하게 부조리를 고발한 사람도 많았다.
―밀레니얼 세대가 공감하는 이유는….
▽최=수많은 루트로 정보를 습득해 ‘어, 이게 아닌데?’가 바로 감지되는 세대다. 기성세대는 ‘다음에 여러분 차례가 온다’지만 왜 참아야 하는지 이해 못 한다. 선거 공천 등의 과정을 보면 386 세대가 주축을 이루지 않나. ▽권=김광진 장하나 이자스민 전 의원은 이미지로만 소비됐다. 장애인에게 비례 1번을 주지만 누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아무도 기억을 못 한다.
―‘까고있네’는 어떻게 되나. ▽권=주목 못 받고 사라질 수 있지만 ‘까고있네’ 사태가 더 큰 부조리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문빠’가 자발적 권리라며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고 무균 상태를 지향하면 문제가 될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