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저녁 서울 마포구 ‘KT&G 상상마당 라이브홀’의 출연자 대기실. 분장이 덧칠될수록 김경선 씨(보컬)의 얼굴이 시체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섬뜩했다. 붓을 든 전지니 씨(건반)는 스스로 화장을 마치고 이미 ‘지니’로 화한 터. 지니가 눈가와 턱에 검정 색조 화장품을 덧칠해 나가자 마침내 김 씨도 상상 속의 존재, ‘엠뉴마’가 됐다. 엠뉴마는 음악가로 분할 때 쓰는 그의 예명. “메이크업이 아니라 콥스 페인팅(corpse painting)입니다. 말 그대로 시체 분장이죠.”
전 씨와 김 씨는 헤비메탈 그룹 ‘다크 미러 오브 트레지디(DMOT)’의 멤버다. “죽은 사람처럼 표현해 불멸의 존재로 거듭나는 거죠. 발할라로 가는 북유럽 바이킹 전사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좀 전에 ‘세니트’로 분한 손경호 씨(기타)의 말이다.
○ “얼굴은 또 하나의 캔버스”
최근 얼굴을 캔버스처럼 활용하는 음악가들이 눈에 띈다. 음악에서 시각적 요소가 중시되면서다. DMOT는 2005년 데뷔 때부터 콥스 페인팅을 했다. 동양화를 전공한 손 씨가 주도했다. 북유럽에서 1990년대 발흥해 콥스 페인팅과 함께 성장한 ‘블랙메탈’ 장르에서 인정을 받으며 해외로 활동 범위를 넓힌 이들에겐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서양화를 전공한 전 씨가 근래 팀에 합류하며 더 본격화했다.
“이것(얼굴)도 하나의 도화지란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해외 밴드들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콥스 페인팅을 연구했지만 점점 저희만의 색깔을 찾아가고 있죠.”(지니)
밴드 ‘매드맨즈 에스프리’도 독특한 얼굴을 가졌다. 일본 밴드 ‘엑스저팬’을 연상시키는 진한 화장 위로 하회탈을 쓴 리더 ‘규호’(본명 이규호)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정확히는 턱이 없는 이매탈이에요. 한국적인 것을 담고 싶었어요. 음악은 종합예술이기에 탐미주의에 초점을 두고 있죠.”(규호)
2010년 결성된 이 밴드는 최근 낸 2집 ‘무의식의 의식화’로 독일 한국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다.
○ 인스타그램에 넘쳐나는 ‘#facetattoo’
문신도 목선 넘어 올라왔다. 페이스 타투(안면 문신) 열풍을 이끈 이는 미국의 젊은 래퍼들. 내년 그래미 어워즈 4개 부문 후보에 오른 포스트 멀론이 대표주자다. 이마에 가시면류관을, 오른쪽 눈썹 위에 ‘Stay Away’(가까이 오지 마)를 새겼다. 래퍼 트래비스 스콧, 릴 잰, 식스나인과 힙합 그룹 ‘미고스’도 유명하다. 미국 뉴욕타임스도 ‘문신, 얼굴의 시대’라는 특집기사를 냈다. 아마추어 래퍼와 비음악인도 가세했다. 인스타그램에서 ‘#facetattoo’를 해시태그로 단 게시물만 369만여 건에 이른다.
문신 중에도 가장 터부시됐던 얼굴 문신은 국내에도 조금씩 퍼지고 있다. 국내 래퍼 가운데 루피, 로스, 키드밀리가 얼굴에 작은 문신을 했다. 웹진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은 “래퍼들에게 몸 문신은 흔한 일이었지만 미국 래퍼 릴 웨인의 안면 문신이 기폭제가 돼 하나의 흐름을 이뤘다”고 했다. 박준우 대중음악평론가는 “문신 트렌드는 점점 더 눈에 잘 뜨이는 쪽으로 변해 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래퍼들의 과시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의도했던 것과 다른 모습이 나오거나 희화화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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