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살롱(salon)’은 가뭄에 단비나 마찬가지였죠. 학원 다니며 삭막한 자기계발을 하기도,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며 세상불평으로 시간을 때우기도 싫었거든요.”
공공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최균 씨(39)는 ‘살롱’ 예찬론자다. 지난해 여름 살롱 활동을 시작한 그는 현재 5가지 살롱 모임에서 활동한다. 그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교류하며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 살롱의 매력”이라며 “살롱 활동을 하며 영화비평가로도 살고 싶다는 꿈을 찾았다”고 말했다.
2018년 대한민국에서 ‘살롱 문화’가 성행하고 있다. 살롱은 본래 17∼19세기 유럽에서 성행하던 귀족이나 문인들의 사교 모임을 일컬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0세기 룸살롱이나 헤어살롱 등 여기저기서 마구잡이식으로 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살롱의 본질적인 취지를 잘 살린 다양한 ‘소셜 살롱’이 각광받고 있다. 최근 살롱 문화는 독서토론이나 영화비평, 요리 등 관심사나 취미를 중심으로 생산적인 모임을 진행하는 게 특징. 대부분 유료 회원제로 운영하며 진입 장벽을 높였다. 그 대신 내부에선 개방성 평등성을 운영 규칙으로 삼아 프랑스의 살롱 문화와 상당히 닮았다.
지난해 문을 연 소셜 살롱 ‘문토’는 1년 만에 27개의 모임을 진행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각 모임은 해당 분야에 조예가 깊은 멤버가 리더를 맡는다. 13일 오후 9시 이 살롱을 찾았을 땐 늦은 밤인데도 요리, 도시공학 등 모임 4개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에서 살펴본 살롱 모임은 멤버들 대부분이 존칭을 썼다. 직업이나 나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따지지 않는다. 분위기도 리더가 일방적으로 진행하기보단 얘기를 나누며 공통의 관심사를 자연스레 찾아갔다. 에세이 살롱에서 만난 양수석 씨(41)는 “살롱에선 대학생과 대기업 간부도 진솔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음악 살롱에 참여한 의사 심예지 씨(32·여)는 “학창 시절 플루트를 연주했지만 까맣게 잊고 살았다”며 “살롱에 참여한 뒤 다시 옛 친구들과 클래식 앙상블 동아리를 결성해 연습 중”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살롱도 등장했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안전가옥’은 SF나 판타지 등 장르 문학 창작자들을 위한 살롱이다.
‘안전가옥’은 올 한 해 살롱 멤버들의 신작 발표회와 창작 워크숍 등이 70여 차례나 열렸다. 자유롭게 서로의 작품을 비평해주거나 공동작품을 구상해 결과물을 잡지로 내기도 했다. 살롱 자체적으로 공모전을 열어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도 했다. 살롱 멤버인 최수진 씨(23·여)는 “하반기 SF·판타지 공모전에 당선된 뒤 매일 퇴근하고 여기로 온다. 내년 상반기 출간이 목표”라고 말했다.
무엇이 사람들을 살롱으로 이끄는 걸까. 전문가들은 ‘취향’의 위상이 높아진 점을 신(新)살롱 문화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트렌드 분석가인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기성세대를 옥죄던 부모 봉양이나 자식 수발의 의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2030세대들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단편적인 소통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직접 얼굴을 맞대는 ‘아날로그의 반격’인 셈이다. 안전가옥 단골인 윤여경 한국SF협회 부회장(소설가)은 “살롱에선 예기치 않은 만남과 의도치 않은 대화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는 일이 많다”며 “SNS에선 거의 불가능한 ‘입체적인 소통’이 주는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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