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 들어서자 잔잔한 음악 대신 금속과 나무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귀에 박혔다. 한쪽에선 손님들이 치과에서나 사용할 법한 드릴을 잡고 ‘위이잉’ 소리를 내며 무언가에 열중해 있다. 이들 손에는 머그잔 대신 망치, 쇠막대기가 들렸다. 카페라기보다는 수공예 작업실로 보이는 이곳은 ‘반지 공방 카페’다.
직원 설명에 따라 기자도 반지를 만들어봤다. 손가락 둘레를 재고 얇고 긴 은막대를 고른 뒤 망치로 두드리며 동그란 모양으로 굽혔다. 평소 별로 써본 일이 없는 여러 공구를 들고 ‘나만의 것’을 만들다 보니 40여 분이 훌쩍 지났다. 모양이 잡히면 취향에 따라 세세한 장식이나 문구를 새기면 된다. 접착제와 은가루를 바른 양 끝을 가스 토치로 붙이면 끝. 욕심을 내 광까지 내면 1시간 만에 나만의 반지가 탄생한다. 취재차 해봤지만 생각보다 훨씬 뿌듯했다. 완성된 반지를 손에 끼웠다 빼 보며 자꾸 셔터도 누르게 됐다.
최근 ‘소만행(소소하게 만들며 느끼는 행복)’을 찾아 공방 카페를 찾는 이가 늘고 있다. 공방 카페는 대략 4, 5년 전부터 조금씩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흐름을 타고 주목받고 있다. 1만∼3만 원 정도 비용으로 친구, 연인과 함께 또는 홀로 카페에서 뭔가를 만들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매력. 카페 손님 임재훈 씨는 “본업과 무관하게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게 오히려 휴식이 된다”고 말했다.
카페를 운영하는 임익분 씨는 “과거엔 20, 30대가 주로 카페를 찾았다면 요즘은 40, 50대부터 부모님과 공방 카페를 찾는 아동 및 1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공방 카페에서 만들 수 있는 물건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간단한 팔찌 등 30분이면 만들 수 있는 장신구 위주였지만, 근래에는 도자기나 미니어처처럼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며칠씩 손님이 시간을 투자해 만들도록 하는 카페도 생겨났다. 대부분 고도의 기술은 필요 없어 어렵지 않게 따라 만들 수 있다.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옷감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일상의 스트레스도 사라져요.”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재봉틀 카페’는 2시간에 1만 원가량 요금을 내면 마치 PC방처럼 친구들과 재봉틀 앞에 앉아 대화하며 각종 소품을 만들 수 있다. 천에 문양을 달아 에코백을 만들거나 아예 옷을 만들기도 한다. 매주 사흘은 재봉틀 카페를 찾는다는 최정선 씨는 “재봉틀에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했다.
‘재봉틀 카페’를 운영하는 김윤주 씨는 “재봉틀을 구매하기엔 부담스러워하는 직장인들이 잠시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이곳을 찾아 1∼2시간씩 작업을 하고 간다”고 말했다. 일반인들이 재봉틀로 직접 옷이나 소품을 만들어 사용하는 문화의 확산은 출판시장에서도 확인된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해 생활 공예·DIY 분야 도서 가운데 ‘옷 만들기’ 도서 매출의 비중이 2014년(7.2%)보다 두 배 이상(16.5%)으로 늘었다. 일본의 옷 만들기 강의를 정리한 번역서 ‘패턴 학교’(이아소) 시리즈 등이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물건을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먹는 샌드위치에 넣을 상추 등 채소를 직접 재배해 먹을 수 있도록 한 ‘식물공방 카페’도 등장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카페가 단순히 사람들을 만나 함께 커피를 마시는 곳에서 머물면서 무언가 창작하고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곳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숍인숍(Shop In Shop·매장 안에 매장을 여는 것)이나 상이한 공간이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형태로 카페는 계속 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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