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여리 예쁜 男배우에 열광… 기타 후려치는 女로커에 환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8일 03시 00분


[컬처 까talk]노 젠더 팬덤의 탄생

부산국제영화제에 8일 참석한 미국 배우 티모테 샬라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싱그러운 매력으로 ‘샬라메 앓이’ 팬덤을 양산했다. 그가 출연한 ‘더 킹: 헨리 5세’는 이런 인기에 힘입어 넷플릭스 영화 최초로 국내 멀티플렉스에 23일 개봉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부산국제영화제에 8일 참석한 미국 배우 티모테 샬라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싱그러운 매력으로 ‘샬라메 앓이’ 팬덤을 양산했다. 그가 출연한 ‘더 킹: 헨리 5세’는 이런 인기에 힘입어 넷플릭스 영화 최초로 국내 멀티플렉스에 23일 개봉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여리여리한 몸매에 싱그러운 미소, 부드러운 곱슬머리를 휘날리는 그를 향해 수많은 팬들이 절박하게 손을 뻗었다. 어떤 이들은 그를 가까이서 보려고 전날 밤부터 노숙하며 대기 줄을 형성했다. 이달 초 부산국제영화제, 미국 남자 배우 티모테 샬라메가 참여한 신작 ‘더 킹: 헨리 5세’의 야외 무대 인사 현장 풍경이다.

야성적으로 넘겨 붙인 옆머리,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지미 헨드릭스처럼 전기기타를 후려갈기는 그를 향해 수많은 팬들이 환호를 질렀다. 여자 보컬 겸 기타 황소윤이 이끄는 밴드 ‘새소년’의 지난달 야외 음악 페스티벌 출연 장면이다.

터질 듯한 상체 근육을 뽐내며 무대를 부술 듯 뛰어다니던 남자 가수, 공주 드레스를 입고 수줍게 웃는 여자 배우에게 이성 팬들의 헌신적 팬덤이 모이던 시대는 갔다. 예쁜 남자, 멋진 여자에 대한 열광. 아름다움과 매력의 관념에 관한 성별 차이의 붕괴…. 이른바 ‘노 젠더 팬덤’의 탄생이 이어지고 있다.

○ 중성 바비인형의 탄생… 젠더에 유연한 Z세대

성별과 성적 매력에 관한 고정관념을 전복하는 물결은 지상파 방송에까지 다다랐다. 최근 방영 중인 KBS2 드라마 ‘조선로코―녹두전’. 여장남자 캐릭터로 화제다. 과부촌에 여장을 하고 잠입한 ‘전녹두’(장동윤)와 기생이 되기 싫은 ‘동동주’(김소현)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남자 배우 장동윤은 여자 배우 김소현과 미모 대결을 벌일 정도의 화사한 여장으로 화제를 모은다.

서두에 언급한 샬라메는 2017년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나이 많은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열연을 선보인 뒤 강력한 팬덤을 구축했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 ‘Z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세대)에서 젠더 통념이 무너지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유명 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지난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Z세대 세 명 중 한 명은 중성적 인칭대명사에 친숙하다. 이들은 정치적 성향처럼 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속성으로 젠더를 본다. 열 명 중 여섯은 각종 양식의 성별란에 ‘남성’과 ‘여성’ 이외의 선택지를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바비인형 제작사 마텔이 지난달 출시한 ‘중성(gender neutral) 바비’. 성별 구분에 관계없이 아이들의 기호에 따라 꾸밀 수 있도록 만들어 화제가 됐다. 마텔 제공
미국의 바비인형 제작사 마텔이 지난달 출시한 ‘중성(gender neutral) 바비’. 성별 구분에 관계없이 아이들의 기호에 따라 꾸밀 수 있도록 만들어 화제가 됐다. 마텔 제공

이런 흐름을 포착한 미국의 바비인형 제작사 ‘마텔’은 지난달 ‘중성 바비인형’을 처음 출시했다. 여성 캐릭터 ‘바비’, 남성 캐릭터 ‘켄’의 이분법은 깨졌다. 중성 바비인형은 성별에 관계없이 다양한 헤어스타일과 패션을 아이들이 취향대로 고르도록 만들었다.

패션에서도 ‘논 바이너리’(이분법을 거부하는), ‘젠더-플루이드’(성별이 유연한)가 트렌드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남자 배우 빌리 포터가 드레스 형태의 가운을 입고 레드 카펫에 올랐다. 가수 셀린 디옹은 지난해 성별 구분이 없는 아동복 라인을 출시했다.

○ “남녀는 아웃오브안중… 한 인간의 예쁨과 멋짐에 반할 뿐”

영화 ‘신비한 동물 사전’ ‘저스티스 리그’로 이름난 미국 남자 배우 에즈라 밀러는 여장의 선두 주자다. 레드카펫마다 화제를 뿌렸다. 그가 이끄는 밴드 ‘선스 오브 언 일러스트리어스 파더’는 음악 정체성을 ‘장르 퀴어’로 소개한다.

4월 1만 석 규모의 체조경기장 공연을 매진시킨 호주 팝스타 트로이 시반은 성소수자로서 뮤직비디오나 무대에서 셔츠 아래로 앙상한 쇄골을 드러내며 매력을 뽐낸다.

공연 예매 사이트 ‘예스24’에 따르면 시반의 4월 공연 예매자 중 여성이 89.3%였다. 밀러가 속한 ‘선스…’의 5월 내한공연은 예매자의 94.2%가 여성. 시반과 샬라메를 좋아한다는 30대 직장인 김지민 씨는 “성별을 떠나 그들이 인간 자체로서 가진 멋짐, 예쁨, 매력에 빠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엠넷 ‘퀸덤’에서 여성 그룹 AOA는 남성복과 단화 차림으로 등장한 뒤 후반부에 긴 머리와 하이힐이 돋보이는 남성 댄서들을 출연시키는 식으로 마마무의 ‘너나해’를 변주해 화제를 모았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동아방송대 교수)는 “크로스 섹슈얼리티는 몇 년 전만 해도 ‘아기 같은 인상의 근육질 남성’이나 ‘터프한 걸크러시 여성’처럼 남녀 매력 요소가 조금씩 섞인 절충적 형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투운동 이후 여성주의가 강하게 대두하며 최근엔 급속히 극단화하는 추세다. 이런 경향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임희윤 imi@donga.com·김민 기자
#노 젠더#녹두전#여장남자#중성 바비인형#퀸덤 a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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