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A 씨(37)가 4일 자녀의 물놀이 장난감을 책상에 늘어놓으며 웃었다. “오리는 일곱 살 난 첫째가 어린이집에서 선물로 받은 거고요, 해바라기 물총은 네 살배기 둘째가 목욕할 때마다 자기 얼굴에 쏘면서 갖고 놀아요.”
하지만 장난감 분해가 시작되자 추억에 잠겨 있던 A 씨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장난감 안쪽엔 하나같이 검은 곰팡이가 가득 피어있었다. 아기 고무오리(러버덕)를 누르자 ‘꿀럭’ 하는 소리와 함께 가래처럼 걸쭉한 물때가 쏟아져 나왔다. A 씨는 “쓰고 나서 말린다고 말렸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최근 러버덕으로 대표되는 유아용 물놀이 장난감 내부가 ‘세균 창고’라는 해외 연구결과가 알려지면서 부모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3∼7세 아동을 둔 가정 3곳에서 1∼4년간 사용한 물놀이 장난감 20개를 제공받아 내부를 살펴보니 14개에서 육안으로 뚜렷이 확인할 수 있는 곰팡이가 쏟아져 나왔다.
곰팡이가 확인된 장난감 14개는 모두 물이 드나드는 구멍이 작아서 사용 후에 내부를 세정제로 닦거나 완전히 건조시키기 어려운 구조였다. B 씨(35)가 제공해준 세 살배기 아들의 고무문어는 1년 넘게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안에 여전히 물기가 남아 있었다. 아이의 피부 각질과 몸속 미생물 등이 뒤섞인 목욕물이 장난감 안에 남으면 부패하기 쉽다.
장난감 안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니 미끈한 세균막이 느껴졌다. 휴지로 살짝만 문질러도 검은 곰팡이가 묻어났다. B 씨는 “아이가 피부염으로 고생한 이유가 장난감 때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반면 곰팡이가 나오지 않은 장난감 6개는 물이 드나드는 구멍이 아예 없거나, 반대로 구멍이 커 사용 후 물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곰팡이가 눈으로 보일 정도라면 세균 오염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스위스 물과학기술연구소와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팀은 스위스 가정에서 수집한 물놀이 장난감 19개 중 11개에서 곰팡이가 나왔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달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했다. 연구팀이 측정한 장난감 19개의 내부 1cm²당 평균 세균 수는 950만 마리였다. 장난감 1개당 세균 13억 마리꼴이었다.
한국소비자원 등 국내에서 이뤄진 조사 결과를 보면 터미널 화장실 변기의 세균 수는 1cm²당 380만 마리, 엘리베이터 버튼은 313마리, 쇼핑카트 손잡이는 110마리였다. 아이들이 손으로 만지고 입에 넣기도 하는 장난감 안에 화장실 변기의 2배가 넘는 세균이 득실거리고 있다는 얘기다. 스위스와 미국의 연구팀은 “면역력이 약한 아동이 세균이 섞인 물을 접촉하면 자칫 눈과 귀, 내장에 질환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물놀이 장난감 포장지에선 어떤 주의 문구도 찾아볼 수 없다. 국가기술표준원의 완구 안전기준에 따르면 ‘사용 전후 세척하라’는 문구를 붙여야 하는 장난감은 사탕반지 등 ‘음식 접촉 장난감’으로 한정돼 있다. 당국은 2월부터 ‘액체를 채운 장난감’엔 세균 검출 기준(1g당 1000마리 이하)을 적용하고 있지만 이는 비눗방울 등 완제품에 포함된 액체만을 대상으로 한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물놀이 장난감 내부는 습도와 온도가 세균이 자라기 딱 좋은 ‘배양기’와 다를 바 없다”며 “장난감을 자주 교체하거나 아니면 삶아서 소독해도 망가지지 않는 재질로 만든 것을 골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댓글 0